입원 30일차, 항암 4회, 방사선 치료 20회.
주말을 쉬고 맞이한 월요일의 방사선 치료는 목을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통증 때문에 밤새 여러 번 깼고, 그 짧은 새벽의 틈마다 “이틀의 쉼”이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어제부터 방사선 치료 부위를 조금 조정한다고 했다. 아마도 그 탓인지 목의 통증은 한층 더 깊어졌고 잠은 더욱 얕아졌다.
오전 7시 10분, 삼성병원 정문을 들어서며 보게 된 익숙한 풍경. 한 대의 셔틀버스가 도착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명찰을 달고 각자의 텀블러를 손에 든 채 QR코드를 찍고 병원 로비로 들어선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들은 대체 몇 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걸까. 나보다 부지런히 하루를 열어가는 이들을 보며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 ‘미생’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첫 출근을 하던 주인공 장그래가 집을 나서며 했던 독백.
“내가 아무리 일찍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나보다 더 하루를 먼저 시작한다.”
그 문장이 당시에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세상에는 늘 나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저 내 속도를 지켜내면 된다는 뜻으로.
지난주 CT와 채혈 결과에 따라 오늘부터는 방사선 치료 시간이 2분 더 늘었다고 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오히려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온몸에 고정틀을 쓰고 마우스피스를 입에 문 채 꼼짝없이 누워 있는 2분은 내게 5분 이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치료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 함께 탄 환우와 운전기사가 어제 있었던 작은 소란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원 3층 공용 휴게실의 테이블과 의자들을 모두 치운다는 공지가 붙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민원.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잠시 웃을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냄새와 소음이 견디기 힘든 불편함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공간에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생각했다.
어떤 의견이 옳고 그른지 따지는 문제는 아니었다. 모두가 아프고 모두가 힘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민원을 무시할 수 없는 병원도, 불편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환자도, 그곳에서 잠시 웃음을 찾던 이들도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단어가 떠올랐다. 배려.
배려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밤늦게 복도를 지날 때 발소리를 줄이는 일. 커튼 너머 들릴까 작은 소리로 통화하는 일. 그리고 오늘처럼 공용 휴게실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이 부딪힐 때, 정답을 가르려 들지 않는 일.
병원이라는 이 작은 세계에서 배려는 규칙이 아니라 숨결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없으면 누구도 숨 쉬기 어려워지는 공기 같은 것.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진짜 치료는 약이나 방사선만이 아니라 이런 작은 배려들이 모여 마음을 덜 상하게 하고 서로를 지탱해 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병실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링거를 맞기 위해 간호사가 들어왔다. 오늘은 유독 주사를 놓을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속으로 ‘매일 같은 혈관에 주사를 맞는데 왜 오늘은 이렇게 오래 걸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에 여섯 번씩 주사를 맞으시잖아요. 자주 혈관주사를 맞으면 혈관이 근육 아래로 숨기도 해요. 몸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거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인간의 몸이 스스로 위기를 인지하고 혈관마저 근육 아래로 숨는다는 사실. 이 얼마나 정직하고 놀라운 생명체인가. 머릿속의 의지가 아니라, 몸 자체가 스스로를 지켜내려 애쓰는 모습이 조금은 경이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런 작은 순간들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매일 주사를 맞으면서도 주사바늘을 계속 꽂아두지 않는 건 내 선택이다. 밤마다 팔에 꽂힌 바늘 때문에 잠을 설친 경험이 있어서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나는 그 불편과 함께 하루를 견디는 쪽을 택했다.
주사가 끝나고 난 뒤, 다시금 아침에 떠올렸던 단어를 꺼내 들었다.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혈관을 숨기는 것도 배려 같았다. 내 몸이 나를 살리려는, 가장 본능적인 방식의 배려.
그렇다면 사람 사이의 배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건 아닐까.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잠깐 덜어주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서 주는 일.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오늘도 목은 아프고 치료는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배려라는 단어가 조금씩 나를 덜 아프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생각 하나로, 오늘도 버틸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