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29일차, 항암 4회, 방사선 치료 19회.
아침부터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난 몇 주와는 다른 결이 흐르는 듯한 감각.
뭔가 조금은 괜찮아진 듯한 아주 작은 희망의 틈 같은 것이 느껴졌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은 여전히 여름의 강도를 품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만큼은 무더운 기운보다 적당한 평온이 감돌았다.
아무것도 특별히 바뀐 건 없지만 단지 컨디션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태도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조금만 숨이 가빠도 두려움이 앞서던 시기를 지나왔다. 미각이 사라지고 물조차 넘기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치던 날들 속에서 나는 꺼지지 않기 위해 버텨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소소한 일상을 이어갔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일, 노트북을 켜고 몇 줄의 글을 적는 일들. 이 단순하고도 평범한 행위들이 다시 가능하다는 것이 이렇게 큰 위안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한동안은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손끝에 힘을 주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다시 글자를 타이핑하고 생각을 문장으로 꺼내 놓는 이 순간이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회복시키는 것만 같다.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덜 아프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감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이 병이 나에게 천천히 가르쳐주었다.
덜 아프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회복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늘 비로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됐다.
치료의 중반을 넘기며 나는 점점 더 이겨내는 법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아픔을 억지로 떨쳐내려 하기보다 그것과 공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용히 이어가는 방법도 함께 배우고 있다.
그 두 감정 사이에서 매번 흔들리면서도 결국 나는 나를 놓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무엇을 극복해야 한다는 강박 대신 나를 지키기 위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는 쪽.
그게 때로는 훨씬 더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걸 이 병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내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에 잠시 멈춘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다짐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조용한 약속이 오늘 하루를 이끌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일은 또 다른 감정이 나를 찾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마음도 몸도 덜 괴로웠고 그 사실 하나로도 나는 충분히 잘 이겨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