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아홉 시에 잠을 청했지만, 밤은 조용히 나를 두 번 깨운다. 자정을 넘긴 시각과 새벽 네 시. 심한 갈증과 목 안쪽의 심한 통증에 잠을 덜 깬 채 침대 옆 물병을 찾는다.
물 한 모금을 넘기기까지도 조심스러웠다. 이제 내게 잠은 한 번에 깊이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짧게 끊어 마시는 숨처럼 그렇게 분절된 채 이어진다.
다시 잠든 듯 눈을 뜬 건 새벽 다섯 시 반 즈음. 창가 너머로 앞산에서 태양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은 한순간에 병실을 덮을 듯 강렬했고 나는 무심결에 병실 바깥 베란다로 나갔다.
아직 햇살은 머뭇거리고 있었고 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서늘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곧 폭염이 쏟아질 거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청량한 바람이 피부에 와닿았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까치와 까마귀가 나란히 울며 부는 바람 속에 얽혀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들의 울음이 주는 소란함이 어쩐지 이른 아침의 적막을 덜 외롭게 했다.
병실로 돌아오자 주말의 고요함이 낯설 정도로 스며들어 있었다. 비교적 컨디션이 괜찮은 환우들은 집으로 잠시 돌아간 듯했고 병원 식당과 복도는 아침부터 쓸쓸했다.
사람의 기척이 줄어든 공간은 더 큰 무게로 적막을 감쌌다.
두유와 삶은 계란 그리고 통밀빵 한 조각. 평소보다 더 천천히, 조심스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체중을 쟀다. 4킬로그램 감소.
지난주 거의 먹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생각보다 덜 빠졌다는 자조 섞인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치료도, 주사도 없는 일요일 오전. 일주일에 이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진다.
몸이 말을 듣지 않던 날에는 그저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제 조금 숨이 트인 오늘, 문득 이 고요한 시간을 ‘무료하다’ 느끼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간은 정말 쉽게 잊는 존재구나 조금만 나아지면 그전의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무기력했던 순간을 견디고 또 지나온 내가 지금의 나에게 실망스러운 건 아니다.
다만, 이토록 쉽게 반응이 바뀌는 나의 마음이란 것이 어쩐지 낯설 뿐이다. 마음은 고정되지 않고 늘 흐른다는 것을 다시 배운다.
모든 음식이 쓰다. 조금만 간이 되어 있어도 혀끝과 목끝에서 쓴맛이 밀려온다. 그래서 점심도, 저녁도, 모든 식사는 간이 없는 죽으로 대체하고 있다.
죽이라도 넘길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어느 순간 입 안에서 고이는 침조차 사라지고 나니 먹는 일은 전쟁이 되어버렸다.
입 속 침.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것 하나가 사라지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침샘이 조금 손상되었을 뿐인데 그 '조금'이 내 삶 전체를 잠식해 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입안 가득 베어 물었던 일상. 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이제는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다시 그 일상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저녁 무렵, 막내에게서 다음 주말 시간을 내어 엄마와 함께 병원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반가움보다 먼저 앞서는 건 미안함이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오랜만에 보는 막내 얼굴, 함께 밖에 나가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 음식도 넘길 수 없어 병원 밖으로 한 발짝 나서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상태다.
막내는 말은 안 했지만 조금 서운한 눈치였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치료가 막바지다. 2주만 지나면 이 고된 일정도 끝나게 된다.
그때 몸이 좀 나아지고 나면 정말로 나아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다시 우리 함께 나가기로 했다.
좋은 계절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