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어제 새벽 내내 내리던 빗줄기가 그친 오전, 잠시나마 선선해질 줄 알았던 공기는 다시 뜨거운 햇빛에 잠식되었다.


창을 열어둔 서재로 흘러들어오는 바람은 습기를 머금은 채 무겁게 느껴졌고 햇살은 묘하게도 따가움 속에 밝음을 함께 품고 있었다.


나는 그 햇살을 마주하며 오늘은 어떤 책을 다시 펼쳐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어제 나른한 오후에 보았던 손석희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의 질문 속에서 정직하게 답하던 인간 문형배, 그리고 어른 김장하라는 이름. 그가 남긴 여운은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고, 결국 나는 다시 책장으로 가 <줬으면 그만이지>를 꺼내들었다.


형광펜의 흔적은 그때 내가 무엇에 마음을 붙잡혔는지 고스란히 말해주었다. 줄마다 다시 읽어내려가다가 오늘은 한 문장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인생은 역경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결심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바꾸며 살 수 있다.”

김주완작가의 <줬으면 그만이지> 중에서

김장하


역경.

역경이라는 단어는 지금의 내 삶과도 겹쳐진다. 역경은 단순히 고통이나 시련의 다른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불청객이자, 동시에 나를 시험하는 가장 냉정한 스승이다.


누구나 피해 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부딪히면 그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역경은 내 의지의 강도를 드러내는 거울이자, 삶을 전혀 다른 궤도로 이끄는 계기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몸의 고통과 마음의 흔들림을 매일 마주한다. 하루하루가 역경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나는 분명히 배우고 있다.


작은 선택 하나가 하루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포기하지 않는 결심이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지. 때로는 고통이 너무 커서 무너져 내리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역경은 나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든다.


결국 역경은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의지의 발휘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를 다시 그려보는 행위다.


우리는 흔히 역경을 장애물로만 바라보지만 실상은 그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고통을 버티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조금씩 단련되고 그 단련이 쌓여 어느 순간 이전의 나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만들어낸다.


역경은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피하고 싶은 마음에 무너져버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똑바로 마주 서는 길이다.


후자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역경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적이 아니라 나를 키워주는 동반자가 된다.


마치 태풍 속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처럼, 혹은 불길 속에서 불순물을 태우고 더욱 단단해지는 쇳덩이처럼, 역경은 결국 나를 더 진실한 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투병의 시간 또한 그렇다. 병이 내 몸을 꺾으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작은 희망을 붙잡고, 다시 하루를 살아낸다.



그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일이며 그 반복 속에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게 된다.


역경은 내게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결심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함께 주었다.


나는 오늘 ‘역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역경은 나를 꺾으려는 시련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