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불면으로 이어진 긴 밤의 끝에 창가로 스며드는 새벽의 붉은 빛은 피곤한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는 듯했다.


서재의 공기는 여전히 고요했고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은 하나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망설임 없이 손이 닿은 책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였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정의와 편견이 교차하는 현실을 기록한 이 소설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마주한 한 문장은 나를 오래 붙들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 중에서


용기.

용기라는 단어를 곱씹다 보니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임을 깨닫는다. 세상은 종종 우리에게 불가능한 도전장을 내민다.


그러나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싸움에 나서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행위가 아닐까.


승패가 아닌 과정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그 고집에 나오는 바로 용기다.


내 투병의 여정 또한 그렇다. 이미 고통과 불편이라는 패배의 증거들이 매일 몸을 둘러싼다.


치료의 부작용은 여전히 삶의 균형을 흔들고 내일의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용기는 두려움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빛나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의 어둠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맞서는 능력이다.


우리는 흔히 두려움을 없애야 용감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두려움이 사라진 순간에는 용기라는 이름조차 필요 없다.


용기는 두려움과 불안을 끌어안은 채로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내적 힘이다.


그래서 용기는 언제나 떨리는 손끝과 불안한 심장을 동반한다.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진짜 용기의 증거다.


새벽의 창가에 앉아 그 문장을 다시 읽으며 투병의 나날들을 떠올렸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원으로 향했던 걸음.


힘겹게 식사를 이어가며 가족과 식탁에 마주했던 순간. 글 한 줄이라도 남기고자 키보드를 두드렸던 시간들. 이 모든 것은 두려움이 없는 선택이 아니었다.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나의 내일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두려움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과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그와 함께 걸으며 끝내 한 걸음을 더 내딛는 힘. 그것이 용기다.


나는 오늘 ‘용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용기란 두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