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불면의 밤을 건너 새벽의 어스름 속에서 책장을 펼치는 이 시간은 어느새 내 삶의 루틴이 되었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시작점이 되었다.


오늘 내 손에 들어온 책은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이었다.


2년 전 막내가 처음으로 건네준 선물이기도 하다. “아빠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거예요”라는 시크한 말과 함께 내게 건넨 책.


다시 펼친 그 책 속에서 형광펜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평균 이상이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평균의 시대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균 이하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토드로즈의 평균의 종말 중에서


평균.

평균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라는 글을 써오면서 수십 가지의 단어를 사유했지만 정작 이 단어는 처음이었다.


나 스스로 대한민국 서민의 평균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믿어왔고 단 한순간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곱씹어보니 그 믿음이야말로 함정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길을 걸어온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눈과 사회의 기준이라는 잣대 속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온 것일까.


평균은 안정감을 준다. 다수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 하지만 그 안도감은 언제든 내 자유를 구속하는 족쇄가 된다.


평균 이상이 되지 못하면 무가치하다는 강박. 평균 이하로 떨어지면 실패자라는 낙인. 나는 이 잣대를 따라 30년을 살아왔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야만 인정받는 직장인으로서의 삶.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정을 꾸려야 안도할 수 있었던 가장으로서의 역할.


그 모든 것이 결국 평균이라는 이름의 무형의 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투병의 과정에서도 나는 같은 생각을 했다. 병실의 하루는 언제나 수치로 시작한다. 체중, 혈당, 혈압, 수치와 수치 사이에서 나의 몸은 평균을 벗어났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상 범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했고 다시 평균에 맞춰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복의 길은 평균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내 몸이 나만의 속도로 회복해가는 과정이었다.


치료 중 미각을 잃었을 때 나는 남들과 같은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맛이 없다는 이 경험조차 내 삶의 고유한 일부라는 것을.


평균의 기준에서는 실패일지 몰라도 나의 몸이 나만의 방식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평균은 실체가 없다. 존재하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궤적뿐이다. 평균은 단지 여러 개의 궤적을 합쳐 만들어낸 가상의 선일 뿐이다.


그 선에 스스로를 맞추려다 보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게 된다. 반대로 그 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를 찾을 때 비로소 나는 나다워진다.


이제야 나는 알겠다. 내가 걸어온 길이 평균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평균은 안도감을 주지만 동시에 속박이 될 수 있다. 숫자로 표시되는 정상 범위 안에 있으면 마음은 잠시 평온해지지만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이 몰려온다.


그러나 그 불안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평균이란 다수의 수치를 모아낸 결과일 뿐 개개인의 고유한 삶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진정한 삶은 평균의 잣대에 맞추어 균일하게 살아가는 데 있지 않다. 나만의 속도를 인정하고 나만의 방향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다름 속에서 나의 존엄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평균을 넘어서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나는 오늘 ‘평균’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평균은 존재하지 않는 기준일 뿐 나의 삶은 오직 나만의 궤적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