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에서 얻은 한 가지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이 이제는 조금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입면의 고통을 지나 잠깐의 짧은 수면 후 다시 깨어나 뒤척이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앉는다. 정적이 고요히 감도는 새벽.
그 시간은 세상과 단절된 듯 나 혼자 남겨진 순간이면서도 묘하게 충만하다. 오늘도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책장을 열었다. 손에 든 책은 팀 패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이었다.
작년 1월. 새해의 첫날, 오십이라는 나이를 맞으며 나는 인생의 경험을 조금 더 넓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팀 패리스가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책. 그는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타이탄”이라 불렀고, 그들의 공통된 습관과 사고방식을 일종의 성공 교과서처럼 펼쳐 놓았다.
그중 여러 조언들을 나는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옮겨 적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눈에 들어온 문장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말이었다.
그는 영화배우이자 주지사로 인생의 무대에서 수차례 다른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일관되게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실력의 우열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승리는 경쟁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라,
이기려고 나온 사람이 갖고 간다는 것이다.”
팀 패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
경쟁.
경쟁은 상대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인지도 모르겠다. 숨을 내쉬고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이미 비교와 평가의 세계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놀던 기억을 되짚어 보면 늘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경쟁이었다.
누가 더 빨리 달리나.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단순한 놀이조차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렸다. 그 속에서 지면 패배자가 되었고, 이기면 승리자가 되어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패배의 날엔 고개를 숙이고 돌아오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학창 시절도 다르지 않았다. 시험 성적과 등수는 곧 나의 위치를 드러내는 지표였다. 그리고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더 나은 자리. 더 안정적인 삶. 더 큰 성취를 향한 경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깨달았다. 경쟁은 더 이상 남들과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맞서고 있는 투병의 과정 역시 또 하나의 경쟁이다.
병이라는 거대한 상대 앞에서 나는 매일 시험대에 오른다. 치료의 고통을 견디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을 버티며, 잃어버린 체력과 미각을 조금씩 되찾아 가는 과정은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다.
이 경쟁에는 심판도 관중도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상대이자 동료다.
약해진 몸을 일으켜 다시 걷고 운동 루틴을 이어가며, 불안을 글로 적어내는 순간순간이 바로 승리를 향한 작은 걸음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나는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며 얻는 우열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오직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가는 일이 진짜 경쟁의 본질임을 지금 비로소 체감한다.
어제보다 더 덜 아프고, 어제보다 조금 더 잘 먹으며, 어제보다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글로 남기는 것. 이 작고도 분명한 차이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말한 ‘이기려는 자의 태도’는 내게 단순한 승부욕이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이자 끝내 나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이다.
세상이 내게 강요하는 경쟁은 더 크고, 더 많이, 더 빨리였지만, 지금 내가 맞서고 있는 경쟁은 더 오래, 더 깊게, 더 단단히 버티는 것이다.
병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펼치며 하루를 이어가는 것. 가족을 위해 작은 식탁 앞에 앉아 함께 밥을 나누는 것.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여전히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승리의 방식이다.
승리는 거창한 환호 속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평범한 다짐 속에서 조용히 쌓여간다.
나는 오늘 ‘경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경쟁은 남과의 우열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넘어 오늘의 나로 나아가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