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가을의 새벽은 여름의 잔열을 확실히 지워낸다. 창문을 여는 순간 차갑게 스며든 바람은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각인시켰다.


어제와 다른 공기. 여름의 무거움은 사라지고 서늘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 차가움 속에서 나는 불면의 긴 밤을 마무리하고 서재의 불을 밝혔다.


책꽂이를 스치던 눈길이 멈춘 곳은 오래전 나를 새 출발로 이끌었던 한 권.

게리 캘러와 제이 파파산의 <더 원씽>이었다.


작년 2월. 나 자신을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로 읽었던 책. 그날 붉은 형광펜으로 긋던 문장이 오늘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균형은 생김새는 명사이지만
사실 동사처럼 움직인다.

또 '균형'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무엇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과정의 일이다.

게리 켈러,제이 파파산 원씽(The One Thi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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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씽(The One Thing)저자게리 켈러,제이 파파산출판비즈니스북스발매2013.08.30.









균형.


저자의 말은 단순한 정의를 넘어선 깨달음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균형을 삶의 필수 조건으로 믿어왔다.



일과 가정의 균형. 인간관계의 균형. 돈과 소비의 균형.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게 고르게 분배하는 것이 성공의 비밀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믿음은 결국 나를 분주하게만 만들었고 정작 무엇 하나 뚜렷하게 남지 않는 삶을 살게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 속담이 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더 원씽>이 말하는 균형은 달랐다. 모든 것을 동시에 잘하려는 균형이 아니라 한 가지를 깊이 밀고 나가며 그 한쪽의 무게로 전체를 세우는 동적인 균형.



중심을 높이고 그 중심에 지속성을 부여하는 꾸준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그 중심을 놓쳤다. 직장에서 원했던 자리도 잡지 못했고 재산이라 부를 만큼의 부도 쌓지 못했다. 오랜 관계라 부를 만한 친구도 손에 꼽는다.



무엇보다 건강을 뒷전으로 미루며 바쁘게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병이다. 암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공백의 결과였다.



몸이 보내던 신호를 무시한 채 나는 일과 관계라는 명분에만 매달렸다.



이제 투병의 과정은 나에게 다른 균형을 묻는다. 더 이상 모든 것을 동시에 쥐려는 균형이 아니다.



지금은 오직 하나. 나를 살게 하는 최소한의 루틴과 회복에 집중하는 균형이다. 운동 루틴을 지키고 식사를 조심스럽게 이어가고 글을 쓰는 작은 행위까지.



그것들이야말로 현재의 나를 중심에 세우는 ‘동사로서의 균형’이다.



이 균형은 눈에 보이는 성취나 타인의 평가와는 무관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쉽게 숨을 쉬고, 오늘 한 숟가락 더 삼킬 수 있고 내일은 몇 걸음 더 걸어갈 수 있다는 작지만 명확한 변화 속에서 유지된다.



그 작은 균형들이 쌓여 내 삶을 다시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 된다. 병으로 무너진 삶의 축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선택과 실천이다.



또한 균형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 안의 태도로 완성된다. 고통이 밀려올 때 회피하지 않고 그 고통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



두려움이 솟아날 때 무너지지 않고 그 두려움을 안은 채 살아가는 것. 누군가는 하찮다고 여길 이 과정이 지금 내 삶의 중심을 세워주는 진짜 균형이다.



이 균형은 고정된 도착점이 아니다. 오늘 내가 만든 균형은 내일 다시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는 훈련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마치 줄 위를 걷는 광대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게 중심을 미세하게 조정하듯, 나도 매일의 균형을 다시 배우고 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잃을 때마다 다시 잡아내는 끊임없는 동작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균형은 모든 것을 잘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조금 기울어져 있더라도 정말 중요한 그 무언가를 그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중심을 잡는 행위다.



세상은 언제나 나를 흔들고 무너뜨리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지켜야 할 한 가지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균형이다.



삶은 언제나 완벽한 수평 위에서 굴러가지 않는다. 어떤 날은 병이 몸을 무겁게 끌어내리고, 어떤 날은 불안이 마음을 한쪽으로 기울인다.



하지만 그 기울어짐 속에서도 내가 가장 지켜야 할 중심은 있다. 지금의 나에게 그것은 살아내기 위한 루틴이고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이며 회복을 향한 작은 실천이다.



결국 균형은 흔들림을 막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쓰러지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기울어진 채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내가 오늘 다시 배운 균형의 진짜 의미다.



나는 오늘 ‘균형’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균형은 완벽이 아니라, 지켜야 할 단 하나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