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가을비가 내리는 새벽은 유난히 깊고 어둡게 다가왔다. 밤새 내린 비의 흔적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창밖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다.


단순히 빗소리라기보다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강한 울림이었다. 거실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내 호흡은 느리고 무겁게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나는 한동안 무너져 있던 내 정신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병으로 인해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그 여파는 정신의 예민함으로 이어졌다.


작은 말에도 쉽게 흔들리고 하찮은 일에도 과도한 감정을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그러나 그 불안정한 나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나였다.


명상을 마친 뒤 서재로 향했다.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던 역사책 한 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빗소리가 내 마음을 억누른 탓일까 아니면 그 소리 속에서 다시 나를 세우고 싶은 작은 의지가 깨어난 탓일까.


오래 전 내가 형광펜의 흔적속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들과 작가의 흑백사진 속에서 오늘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다음과 같다.


“실존은 과거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닌
지금의 나를 계속 깨우쳐 나가는 행위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신한촌을 기록하는 건
100여 년의 시간을 잇는
하나의 실존적 행위인 셈이다.”

뭉우리돌의 들녘 중에서


실존.

조금은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다. 아니 어려운 단어라고 해야할까. 실존이란 단어는 마치 철학자들의 전유물이라고 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가을비 소리와 함께 찾아온 문장속의 실존이란 단어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친밀하게 내 머리속을 잠식해 나아갔다.


실존이란 과거의 흔적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행위라는 말. 내가 투병을 통해 매일을 버티며 살아내는 행위야말로 그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았다.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 이미 지나간 추억 속에서 내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시간은 사실 실존을 붙잡는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늘 호흡하는 나, 오늘 쓰고 있는 글, 오늘의 고통과 오늘의 다짐이 바로 실존의 증거였다.


나는 종종 나를 설명하려 할 때 과거의 사건들로 돌아가곤 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지만 투병의 과정을 지나며 깨닫게 된 것은 그런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붙드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의 나를 세우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항암과 방사선으로 무너져가는 몸을 붙들고 다시 걸음을 떼는 일, 하루의 짧은 운동 루틴을 지키는 일, 글 한 줄을 기록하는 일. 그것들 이야말로 실존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역사 속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거대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실존은 지금 눈앞의 고통을 견뎌내는 데 있었다.


감옥에서의 하루, 망명지에서의 하루, 기록하고 싸우는 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었다. 실존은 그렇게 먼 미래의 그림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달려 있다.


그 깨달음은 내 투병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을 마주한 후 나는 ‘언젠가는 나을 것이다’라는 미래의 희망만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 만으로는 하루를 살아내기 어려웠다.


결국 내가 붙잡은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작은 행위들이었다. 오늘의 호흡, 오늘의 명상, 오늘의 한 끼 식사. 그것이 쌓여 내일을 가능하게 한다.


실존은 지금을 해석하는 태도이며 살아내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내 몸이 약해졌다고 해서 내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내가 여전히 나로서 존재하려 애쓰는 한 실존은 계속된다.


그것이 글로 기록되든 단지 호흡으로만 이어지든 모두 같은 무게의 실존이다. 오늘 아침의 빗소리가 내게 준 울림은 바로 그것이었다.


빗방울은 하늘에서 떨어져 대지를 적시고 강물이 되어 사라지지만 그 순간마다 분명히 실존한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결국 사라지지만 사라지기 전까지의 모든 순간은 실존의 시간이다.


실존은 단순히 ‘존재한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을 수 있는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 흔들리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끝내 마주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 앞에서 답을 내리는 행위 자체가 실존이다.


실존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더욱 빛난다. 나는 병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 잃음 속에서도 여전히 나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화려함으로 증명되지 않고 미래의 약속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붙드는 한 호흡, 한 줄의 글, 한 번의 걸음으로 확인된다.


실존은 그렇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의 연속 속에서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나는 오늘 ‘실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실존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순간을 살아내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