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길이가 같던 균형의 날이 지나고 이제는 밤이 조금씩 길어지는 계절에 들어섰다. 새벽 창밖을 바라보니 어둠의 두께가 전보다 확연히 짙어졌다.
단순히 내 감각이 예민해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낮보다 긴 밤의 무게가 계절의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더해질수록 달빛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검은 하늘 위에 한층 더 또렷하게 빛나는 달.
그것은 어둠을 증명하는 동시에 어둠을 견디게 해주는 등불처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깊어진 밤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밝은 빛을 마주하고 있었다.
짧은 명상을 끝내고 서재로 향했다. 이 어두운 계절의 새벽에 내 마음을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제 읽었던 <뭉우리돌의 들녘>을 덮고 오늘은 그 전편인 <뭉우리돌의 바다>를 꺼냈다. 두 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이어져 있었다.
잊히거나 가려진 우리의 역사를 불러내는 책. <뭉우리돌의 바다>는 멀리 인도와 멕시코, 쿠바,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국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한 작품이다.
작가는 그들의 후손과 흔적을 직접 찾아가 사진으로 남기고 글로 새겼다. 나는 이 기록을 따라가며 한동안 잊고 살았던 역사의 어두운 편린을 다시 마주했다.
책장을 넘기던 중 서문 속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인생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란 생각 때문이다.”
<뭉우리돌의 바다> 서문 중에서
질문.
질문은 늘 역사를 움직여 온 동력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낯선 땅에서 가졌던 것도 ‘어떻게 살아야 조국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치열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있었기에 고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 삶을 내던질 수 있었다. 거창한 역사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나’,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없나’와 같은 질문이 있을 때에만 삶은 방향을 갖는다.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삶을 붙드는 뿌리다.
질문이 없으면 우리는 남이 내려준 답을 좇으며 흔들리고 질문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인생을 답을 구하는 여정으로 여겨왔다.
좋은 직장, 안정된 생활, 가족의 행복. 그것들을 모두 삶의 답처럼 여겼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진짜 중요한 것은 어떤 답을 얻느냐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답은 질문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질문 없는 답은 공허하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올바른 질문을 던지기보다 그저 답을 서둘러 찾는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도달하려 애쓰며 남들이 옳다고 여기는 답을 재빨리 붙잡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자기 인생에 필요한 질문은 하지 못한 채 남의 답을 살아가는 꼴이 된다. 그러니 방향은 쉽게 어긋나고 삶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투병의 시간은 이 사실을 더 깊게 깨닫게 했다.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 내가 원한 것은 답뿐이었다.
치료 방법은 무엇인가? 완치율은 얼마나 되는가? 앞으로 몇 년을 살 수 있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답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임시적이라는 것을.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느냐는 사실이었다. 병상에서 던진 질문들은 날카롭고 잔인했다.
왜 나인가? 라는 질문은 원망을 불러왔고, 나는 끝내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라는 질문은 눈물 속에서도 내 삶을 다시 세워주었다.
질문은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답은 그저 순간의 위안일 뿐이었지만 질문은 길게 이어져 내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었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절박한 질문에서 시작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나아갔다. 질문이 깊어질수록 답은 단순해졌다.
살아내야 한다. 하루를 붙잡아야 한다. 오늘의 나를 버텨야 한다. 그 단순한 답은 사실 수많은 질문을 통과한 뒤에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대화에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늘 질문으로 되물었다. 그 과정에서 제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갔다.
질문이 곧 삶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사실을 그는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이다. 나의 삶도 다르지 않다.
어제의 답은 오늘의 질문 앞에서 힘을 잃는다. 오늘의 질문은 내일의 방향을 바꾼다. 그러니 진짜 중요한 것은 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품는 일이다.
이제 나는 답을 서둘러 찾지 않으려 한다. 대신 질문을 더 정직하게 던지고 싶다.
나는 지금도 살아있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내가 끝내 놓을 수 없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 이야말로 앞으로 나를 이끌어 줄 등불이 될 것이다.
어두운 계절의 새벽에 달빛이 더 밝게 빛나듯, 질문은 내 삶을 앞으로 움직이는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답은 질문을 위해 잠시 머무는 단어일 뿐이고, 질문은 답을 존재하게 하며 끝내는 내가 살아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질문’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답을 가능하게 하는 생존의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