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서늘한 새벽바람이 창문틈으로 스며들어왔다. 짙어진 어둠 속에서 빛이 더디게 번져오고 있었고 낮보다 길어진 밤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균형의 날이 지나고 나니 계절은 더 빠른 속도로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기상에 잠시 당황했지만 오히려 그 늦음이 내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서재 의자에 앉아 지나온 책들을 훑던 중 내 시선은 최승목 작가의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에 멈추었다.


이른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늦은 나이도 아닌 오십이라는 지점에서 손자병법이라는 고전이 주는 무게감은 단순한 병법서가 아니라 인생의 전략서처럼 다가왔다.


이번 한주의 새벽은 손자병법과 함께 그 안에 담은 문장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의 단어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책장을 넘기며 오늘 내게 들어온 문장은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본질’이라는 단어를 유독 내 눈을 통해 머리속을 파고 들었다.


“<손자병법>을 눈으로만 읽을 경우
그 안에 숨겨진 깊은 통찰과 지혜를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자에 집착해 본질을 보지 못하고,
표면을 보느라 내면을 놓칠 수 있죠.”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중에 - 25page


본질.

본질은 단순히 사물의 속성을 가리키는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 본질을 너무 자주 잊는다. 표면적인 일들에 매달리고 눈앞의 감정에 휩쓸리며, 껍질만 붙잡은 채 알맹이를 놓쳐버린다.


투병의 과정에서 나는 본질의 가치를 절실히 배웠다. 병 앞에서 인간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평정심이고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본질이다.


그 본질은 다름 아닌 ‘살아있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의식할 힘도 성취를 쫓을 여유도 없었다.


다만 하루를 버티고 한 모금의 물을 넘기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그 사실 자체가 삶의 본질이 되었다. 고통이 깊을수록 본질은 단순해졌다. 숨을 쉬는 것, 밥을 먹는 것, 글을 쓰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의미라는 말이란 어떤 철학자의 말이 순간 떠올랐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그 것이야 말로 바로 본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존재의 본질을 잊고 역할에 몰두한다. 직장에서의 지위, 사회적 평가, 남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본질을 덮어버린다.


나 또한 짧지 않았던 52년간의 삶을 본질을 잊은 채 누군가의 요구에 맞춘 역할에 몰두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병 앞에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그런 것들은 껍질처럼 쉽게 벗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남는 것은 결국 존재의 단순한 본질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본질이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머무를 필요는 없다. 본질은 실천의 중심이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할 때 ‘이것이 본질에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예를 들어, 건강이 본질이라면 나는 무리한 욕망을 줄이고 운동과 식습관을 지켜야 한다. 관계의 본질이 사랑과 신뢰라면 나는 불필요한 말과 감정싸움을 줄여야 한다. 글쓰기의 본질이 성찰이라면 나는 꾸준히 책을 읽고 기록해야 한다.


본질은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기준점이다. 그러나 본질을 붙잡는 일은 쉽지 않다. 표면은 늘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반면 본질은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질보다 순간의 쾌락을 선택한다. 나 또한 그랬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건강이 본질임을 알았고 가족과의 시간을 놓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달았다.


본질은 언제나 잃고 난 뒤에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고자 한다. 매 순간 본질을 먼저 묻고 잃기 전에 지키려 한다.


본질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가장 깊은 뿌리다. 병으로 인해 흔들리던 나를 지탱해준 것도 본질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답은 단순했다. 살아가는 힘. 사랑하는 가족. 하루를 버티는 의지. 그것이면 충분했다.


본질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살아있게 하고 끝내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나는 오늘 ‘본질’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본질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