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의 차가움이 어제와는 또 다르게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계절의 이동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하다가도 문득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짧아진 낮과 길어진 밤의 어둠, 창가에 앉아 숨을 고르며 손자병법의 한 문장을 따라가다 오늘은 변화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손자는 <지형>에서
“지형과 상황이 달라지며
태도와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상대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나를 변화해야 합니다.

나아가 잘 변화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고 위태롭지 않습니다.

오십에 읽는 손자 병법중에서 40page


변화.

손자가 던진 이 문장은 단순히 전쟁의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삶 전체의 태도를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진화를 통해 지금의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에게 변화를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즉, 변화는 본질을 의미한다.


그렇게 인간은 변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동시에 변화 앞에서 늘 망설인다. 본질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본질을 바꾸지 않으려는 습성 또한 강하다.


그러나 변화 없는 본질은 언젠가 퇴색한다. 변화가 본질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을 지켜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배우고 있다.


우리가 본질이라고 믿는 것도 사실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유지되어 온 것인지 모른다. 나무가 수백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뿌리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새로운 잎을 피워내는 능력 덕분이다.


이것이 바로 변화의 본질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진화는 멈춘다. 이는 곧 생명이 멈추는 것이고 인간은 사라진다. 그럼에도 인간은 변화를 거부하려는 습성을 지키려 한다.


지켜야 할 것은 거부의 습관이 아니라, 내면에 잠자고 있는 변화의 씨앗인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태와 습관을 고수하며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투병의 시간은 내게 가장 강력한 변화의 요청이었다. 병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될 수 없었다. 음식의 습관이 달라졌고 하루의 리듬이 무너졌다.


좋아하던 것들을 멀리해야 했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일상조차 낯설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 모든 변화가 무너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깨 달았다. 변화란 파괴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적응이었다. 변화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변화는 감정으로 다가오면 두려움이지만, 실천으로 옮겨지면 힘이 된다.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가 몸을 지켰듯이 마음의 변화는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다.


새로운 책을 펼치는 일도 변화이고, 늘 하던 길을 잠시 멈추는 것도 변화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손자의 말처럼 좋은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위태롭지 않다.


병상에서 배운 또 하나는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는 점이다. 나는 예전처럼 무리하게 살아갈 수 없고 이전의 방식으로 나를 증명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변화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내가 선택해야만 하는 숙명이자 진화의 조건이었다. 계절도 낮과 밤도 균형의 날이 지나면 변화를 시작한다.


나 또한 변해야 한다. 어제의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내일의 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머무르면 본질은 결국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반대로 두려움을 지나 변화의 길을 선택할 때, 본질은 더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변화는 본질의 적이 아니라 본질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변화는 정체성의 적이 아니다. 정체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흡수하며 유지되는 흐름이다.


강물이 바위를 깎아내리면서도 여전히 강물인 것처럼. 인간도 변화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며 진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내가 병을 겪으며 놓쳤던 평범한 하루의 의미를 다시 붙잡은 것도 변화의 선물이다. 변화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무심히 흘러가던 시간 속에 서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변화’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본질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