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공기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9월의 끝자락을 보내고 10월의 첫날을 맞이하는 순간 창문을 스치는 바람은 더 차갑고 또렷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켜 책을 펼치고 손자병법의 문장을 다시 곱씹는 일은 이제 나의 하루를 여는 의식처럼 자리잡았다.
본질과 변화라는 주제로 며칠을 사유한 뒤 오늘 나를 멈추게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더 이상 위인을 존경하지 마십시요.
그냥 바라만 보십시오.
그들은 당신의 존경을 받기 위해 살다 가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니 존경받게 됐을 뿐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존경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존경을 거두고 당신의 길을 가십시요….
인간이 인간을 존경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편향적 몰입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중에서 - 82page
존경.
흔히 위대한 인물을 떠올리면 그들을 높이 받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 문장은 존경을 거두라는 도발적인 선언처럼 들렸다.
그들이 존경받기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길을 가다 보니 존경이 따라왔다는 사실. 그렇다면 존경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품어온 존경심 역시 결국 나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몰입이었는지도 모른다.
존경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숭배할 때 나는 오히려 내 삶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넘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퇴사를 하고 나는 성공이라는 혹은 다시 시작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독서를 시작했다.
책 속 인물들의 치열한 발자취는 감탄을 넘어 곧바로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그들을 따르려 애썼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책 속 인물들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 시작했다. 나만의 길이 아니라 그들의 길을 답안지처럼 베껴 쓰려 했던 것이다.
또한 성공한 유튜브 강연자들을 보며 그들을 존경한다는 말로 포장을 했지만 실상은 그들의 발걸음을 무작정 따라가려는 욕심이었다.
“그들이 했던 일인데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단순한 구호를 반복하며 나는 나 자신의 상황과 능력을 돌아볼 틈조차 주지 않았다.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그 다짐은 곧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도구가 되었고 결국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자신들을 존경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기 삶을 살아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그들을 존경이라는 대상으로 높여 놓고 그들만큼 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자책하며 지난 아홉 달을 보냈다.
존경은 애초에 나를 일으키려던 의도였지만 어느새 나를 옥죄는 굴레가 되어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투병의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존경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동시에 어떻게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치료 과정에서 만난 의료진, 늘 곁에 서 있던 가족, 버팀목이 되어준 책 속의 저자들. 나는 그들을 존경하며 버텼다. 그러나 지나친 존경은 곧 의존이 되었다.
그들을 흉내 내고 그들의 방식에만 기대려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의 회복의 길을 잃을 뻔했다. 존경이란 결국 타인의 삶을 빌려 내 삶을 대신하려는 유혹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존경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례함이나 배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들의 길은 그들의 길이고 나의 길은 나의 길이다. 그들의 발자취가 내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어도 그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은 결국 내 것이다.
내가 진정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이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는 태도다.
이제 나는 존경을 단순한 우상화가 아닌 성찰의 거울로 받아들이려 한다. 존경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올려다보
기보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내려다보고 다잡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존경은 편향적 몰입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단단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존경을 거두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남의 삶에 매달리지 않고 나의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나는 오늘 ‘존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존경은 누군가를 의존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 나의 길을 찾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