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39일차의 기록
가을의 새벽은 겨울의 새벽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아직 내 마음이 겨울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여름의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가을의 새벽에 몸을 일으켜 조금은 희미한 스텐드 불빛 아래서 손자병법의 해석을 읽으며 오늘 나는 ‘변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은 9월의 마지막 날이다. 매달 첫날이 있으면 마지막 날이 있으니 매월 찾아오는 이 마지막 날의 의미가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9월은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날로 기록된다. 회복과 기다림, 그리고 작은 일상의 의미를 다시 새겨준 시간이었다.
항암과 방사선이라는 낯설고도 긴 치료의 터널을 지나고 집에 돌아와 맞이한 첫 달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동시에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하루하루가 특별하지 않은 듯 흘러갔지만 그 속에는 분명 변화와 배움이 있었다. 지난 50년간 먹어왔던 모든 음식들을 바꿔야 했고, 낯선 음식들로 삼시세끼를 채워야 했다.
어떤 날은 허약한 체력 때문에 집안일 하나에도 긴 휴식이 필요했다. 뜬눈으로 밤새우는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고, 생전 겪어보지 못한 변비라는 고통을 체험하게 되었다.
반면 어떤 날은 아내와 함께한 짧은 외출이나 가족과의 식사에서 이전에는 당연하다 여겼던 행복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6년간 함께 했던 후츄를 딸의 집으로 보낸 빈자리를 보게되었고, 오랜 세월 함께했던 화분을 내어놓으며 겪은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빈자리는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졌다. 내가 떠나보낸 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무게였음을 알게 된 것이다.
9월에는 8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다. 그리고 ‘역경’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22개의 단어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나의 삶과 병에 대한 태도와 연결 지었다.
완벽할 필요는 없고 오늘 하루를 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위안을 얻었다. 글로 남긴 기록은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한 달 동안 나는 기다림의 의미를 배웠다.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며 보내는 기다림, 그리고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마음까지.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보냄으로 인해서 기다림이 생기는 것인지, 기다림으로 인해서 보냄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9월을 보내며 나는 깨닫는다. 삶은 거창한 사건들보다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소소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치유의 방법이라는 것을.
10월의 문턱에서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완치라는 먼 목표를 향해 가는 길 위에서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9월의 가장 큰 선물이다.
루틴처럼 흘러간 하루였지만 저녁 무렵 TV 속 풍경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대구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기억될 한 장면.
바로 21년 동안 삼성라이온즈에서 ‘돌부처’라는 별명으로 마운드를 지켜온 오승환 선수의 은퇴식이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이 모습은 단순한 한 선수의 은퇴가 아니라 한 사람이 인생의 무대를 마무리하는 순간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 직업에 인생을 바치고 마침내 그 직업을 떠나야 하는 날. 그는 오늘 팬들에게 ‘마지막’이라는 이름의 인사를 남겼다. 그러나 팬들은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그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품고 기다릴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나 역시 지난 내 인생을 잠시 돌아보았다. 작년 12월, 26년 동안 몸담았던, 아니 인생을 온전히 바쳐왔던 직업을 떠났다.
단순히 한 가지 일을 내려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하나의 보냄은 나의 일상과 관계, 그리고 삶의 풍경까지도 연달아 흘려보내는 시작이 되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직장 동료들과 선후배들, 수많은 시간 속에서 신뢰를 쌓아왔던 고객들, 20년 넘게 내 발과 함께 도로 위를 달리며 인생의 구간을 함께한 애마까지.
그것들은 단순한 사람과 물건이 아니었다. 내 청춘의 한 조각이었고 삶의 무게를 버텨주던 기둥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고 그렇게 보내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온 시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보냄은 곧 기다림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길 위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설 수 있을지 또 어떤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어떤 의미를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마치 은퇴하는 선수를 보내며 팬들이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그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 역시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보냄과 기다림이 결국 삶을 움직이게 하는 두 개의 축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9월은 또한 내게 다른 많은 ‘보냄’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잃는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희망을 준비하는 기다림의 과정이기도 했다.
오늘의 은퇴식처럼 삶에도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보내는 일은 늘 아쉽고 기다림은 늘 간절하지만 그 두 감정이 교차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 있음을 더 깊게 느낀다.
그래서 9월의 마지막 날, 나는 배운다. 보내는 일에도 의미가 있고 기다림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이 한 달이 내게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