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8.보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37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누군가의 빈자리로 인해 생긴 공허함 때문이었을까. 한동안 사라졌던 입면 장애가 다시 찾아와 쉽게 잠들지 못한 밤을 보냈다.


창가로 스며든 찬 바람은 남아있던 잠의 기운을 날려버렸고 명상과 짧은 독서라는 익숙한 루틴으로 아침을 열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뒤, 최근 들어 서로이웃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물론 광고를 위한 발걸음도 있고 우연히 들렀다 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내 글에 눈길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분들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한다.그 중에서도 유독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신 몇 분이 있다. 그중 한 분, ‘별꽃’님은 나에게 특별한 이름으로 남는다.


오천만 인구 중 블로그라는 작은 창을 통해 맺어진 인연인데 하필이면 같은 대구라는 지역에 살고 계셨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오래된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하시고 내가 15년을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대구 구석구석을 사진과 글로 소개해주시는 모습에서 요즘 나는 학생처럼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며칠 전, 내가 올린 양귀자 소설 서평을 읽으신 ‘별꽃’님이 댓글을 남기셨다. 양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원미동 사람들>을 두 권 가지고 계신다며 괜찮다면 한 권을 보내주고 싶다는 따뜻한 제안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받을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원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농담을 할 만큼 선물 앞에서는 솔직히 기분 좋게 손을 내미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 뒤 주말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보았다. 사실 이것저것 주문한 물품이 많아 처음에는 ‘별꽃’님이 보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박스를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단순한 책 한 권이 아니었다. <원미동 사람들>과 함께 곱게 접힌 손편지 그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물론이고 곁에서 상자를 함께 열어보던 아내까지도 말없이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따뜻하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오래도록 상자의 여운이 남았다.


병으로 인해 잃은 것들 그리고 보내야 했던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건 결국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회색 종이상자 속, 혹시 모를 파손을 걱정해 꼼꼼히 베일처럼 둘러싸인 비닐 속에 감춰진 두 권의 책을 꺼내 다음에 읽으려고 준비해둔 책들 사이에 차곡차곡 끼워 넣었다.


직접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과 함께 나란히 놓인 그 모습이 괜스레 뿌듯했다.


읽고 싶은 책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즘의 나에겐 든든한 위안이 된다. 앞으로 한동안은 어떤 책을 읽을까 하는 고민조차 호사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책장이 풍성하다는 건 어쩌면 마음이 부자가 된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부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진 상태가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이 오늘에서야 문득 스친다.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할 수 있도록 늘 내 곁에 그 좋아하는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고 내가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부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렇게 며칠 전에 도착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정리하며 덕분에 내가 조금 더 부유해진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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