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0일차의 기록
10월의 첫날,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9월의 바람이 아직 여름의 잔열을 머금고 있었다면오늘의 바람은 몸을 서늘하게 스치며 ‘새 계절이 왔다’는 것을 단호하게 알려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하는 길에 문득 며칠 전의 공허함이 되살아났다. 늘 내 발소리에 맞춰 나타나 사료와 물을 달라며 울던 녀석.
살갑게 구는 법은 없었지만 6년의 시간을 함께 쌓아 올린 존재였다.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무의식 중에 내 걸음을 베란다 쪽으로 이끌었다. 애써 외면해도 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오래 남는다.
짧은 명상을 마치고 손자병법의 구절을 다시 읽었다. 오늘 내 마음을 붙잡은 단어는 ‘존경’이었다. 그 단어가 가진 무게는 내게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존경을 늘 잘못 이해해왔다는 걸 오늘에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타인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을 존경이라 착각했고 그 과정에서 내 삶의 주도권을 잃은 채 헤매곤 했던 것이다. 이 자각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이미 충분히 낯설고 또 의미 있었다.
아침 루틴을 끝내고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뉴스는 어김없이 누군가를 끌어내리려는 말들로 채워져 있었다.
채널을 돌리면 ‘건강 상식’을 포장한 홈쇼핑이 흘러나왔다.
암을 예방하려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음식, 고혈압을 막으려면 꼭 챙겨야 한다는 식품들을 소개한다. 화면 속 의사와 패널들은 의학적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굴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건 그 제품을 파는 홈쇼핑이었다.
자본과 정보가 뒤엉켜 만든 풍경. 씁쓸함은 채널을 넘길수록 더 짙어졌다. 남은 채널은 대부분 먹방이었다. 섬에서, 외국에서, 캠핑장에서,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에 매달려 흥청망청 떠든다.
한때는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문화가 유행이더니, 이제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단체로 먹는 것이 새로운 포맷이 되었다. 지금의 내 현실, 사라진 미각과 투병이라는 조건이 이런 프로그램들을 더 멀게 만든다.
설령 예능으로 가볍게 보려 해도 똑같은 얼굴들이 인위적인 리액션을 반복하는 장면에서 나는 곧바로 채널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내가 뜬금없이 TV 프로그램 평론가가 된 듯 말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최근 내 취향에 꼭 맞는 드라마를 하나 만났기 때문이다. 한석규 주연의 〈신사장 프로젝트〉. 빠른 전개, 상식을 깨는 방식, 법의 그림자 속에 감춰진 현실을 드러내는 이야기.
법은 결국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현실을 비추고 주인공은 그 법의 사각지대를 파고들며 문제를 해결한다. 차갑게 보면 위법일 수도 있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정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특히 주인공 신사장이 빌런에게 위법 사실을 알릴 때마다 반복하는 대사가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냐?”라는 물음에 그는 웃으며 답한다.
“아니, 난 지금 협박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러 온 것입니다.”
협박이 아닌 협상. 단지 대사 하나지만 내게는 관계 속에서 품고 살아야 할 좌우명처럼 다가왔다. 인생의 많은 순간이 결국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억누르거나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이해하고 길을 찾아가는 협상. 그것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방식 아닐까.
오늘은 존경이란 단어와 협상이란 단어가 내 하루를 동시에 흔들어 놓았다. 두 단어는 서로 닮아 있었다.
존경이란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인정하면서 내 자리를 지키는 균형이어야 하고 협상이란 일방적인 굴복이 아니라 서로의 틈에서 찾아내는 공존의 길이기 때문이다.
10월의 첫날, 나는 이렇게 두 개의 단어를 가슴에 넣어두었다. 존경과 협상. 앞으로 남은 날들을 버텨낼 나만의 무기처럼 말이다.
오후 회복의 일상을 보내던 중 딸에게 연락이 왔다. 추석을 앞두고 회사에서 선물 세트가 몇 개 들어왔는데 혼자 들고 가기엔 벅차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나는 흔쾌히 퇴근 시간에 맞춰 딸의 회사 앞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저녁도 함께 하자며 약속을 잡았다.
메뉴는 회사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막창집. 막창이라 하니 순간 머뭇거렸다. 항암 이후 자극적인 음식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때 딸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막창 말고 차돌박이 관자 삼합 드시면 돼요. 그게 이 집에서 제일 맛있다니까.”
막창은 지방 덩어리이고 차돌박이는 단백질이니 괜찮지 않겠냐는 딸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늘의 저녁은 정해졌다.
아내도 퇴근 후 곧장 합류했고 시험기간을 마치고 일찍 집으로 돌아온 막내도 함께 동행했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저녁 약속을 향해 함께 움직였다.
딸이 미리 도착해 자리를 잡아놓지 않았다면 긴 웨이팅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부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했고 한쪽에서는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문득 이런 풍경이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의 소란스러움과 눈앞에 차려지는 음식들.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서로의 그릇을 놓아주고 음식을 덜어주는 모습까지. 투병으로 한동안 멀리했던 평범한 일상이 오늘 저녁에는 다시 내 앞에 돌아와 있었다.
게다가 오늘 저녁은 얼마 전 정부에서 지급된 2차 민생지원금으로 해결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지금의 우리 생활에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되는 돈이었다.
단순히 지갑을 채워주는 금액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들며 한 끼를 나눌 수 있게 한 작은 여유였고 그 여유가 곧 내게는 회복의 또 다른 증거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