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휴식 뒤에 앉는 서재의 책상은 낯선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두달동안 꾸준히 해왔던 새벽의 루틴도 열흘의 휴식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바로 습관이었다.
아직 무거운 눈꺼풀과 몸의 기운을 깨우기 위해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어둠 속의 새벽은 더 길고 무겁게 깔려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열린 창문 사이로 이제 초겨울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강한 바람이 들어와 방을 채웠다. 이렇게 계절은 언제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쉬어가는 사이, 세상은 늘 조금씩 앞서 나간다. 다시 새벽 루틴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재 앞에 앉았다. 책장에 나란히 정리된 책들 사이로 눈길이 닿은 한 권.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였다.
작년 생일에 딸이 불면으로 고생하던 나를 위해 선물했던 책이다. “아빠, 이 책 읽으면 밤이 덜 외로우실 거예요.” 딸이 건넨 책 속 첫 장에는 짧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잠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잠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하지만 병을 앓는 동안 그 균형은 쉽게 깨졌다. 통증과 불안으로 인해 잠을 거부당한 날들이 이어졌고, 잠들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가 약해지는 느낌이었다. 잠은 그렇게 나에게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늘 다시 그 책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진화가 죽 이루어지는 동안
수면이 계속 존속해 왔다는 것은
수면이 그 모든 명백한 위험과 피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혜택을 분명히 제공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중에서 - 16page
진화.
이 단어가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인간이 진화의 긴 과정 속에서 포기하지 못한 것이 바로 잠이었고, 그것은 생존을 위해 선택된 행위였다는 것이었다는 사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곧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잠을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잠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병상에서야 비로소 체감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던 시절, 내 몸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한계를 드러냈다. 그때마다 ‘자야 낫는다’는 말을 믿고 눈을 감으려 했지만, 고통이 그 믿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벽 두 시, 세 시에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나는 왜 잠들지 못하는가?’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에게 필요한 진화의 과정이었다.
불면의 시간은 나를 단련시키고, 기다림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때의 나에게 진화는 병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잠은 결국 신체가 자신을 재설계하는 시간이다. 근육은 회복하고 세포는 다시 복구된다. 그리고 마음은 하루 동안의 기억을 정리하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새벽 눈을 뜨며 내 안의 진화를 확인한다.
아직도 완전한 잠은 오지 않지만, 깨어 있는 동안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웠다. 잠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시간마저도 나를 성장시키는 진화의 일부라고 믿게 되었다.
진화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변화의 누적이다. 매일의 반복 속에서도 어제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일.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조금 더 부드럽게 자신을 대한다. 그 차이가 바로 진화의 증거다.
과거에는 성과와 효율을 위해 몸을 혹사시키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쉼이야말로 인간이 이룩한 가장 정교한 생존의 기술임을 안다.
연휴 동안의 늦잠과 불규칙한 리듬은 나에게 작은 퇴화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 새벽, 다시 루틴을 회복하려는 이 시도가 나를 다시 진화의 궤도로 올려놓는다.
진화는 늘 다시 시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비록 그 시작이 조금 늦더라도 방향이 올바르다면 생명은 반드시 회복한다.나는 잠을 통해 회복을 배우고 불면을 통해 인내를 배웠다. 그리고 다시 아침을 맞으며 삶을 배우고 있다.
딸이 건넨 책 한 권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결국 삶이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음과 잠듦이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진화이며 내가 병을 통해 새롭게 배운 삶의 방식이다. 이 새벽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내 몸의 회복도, 마음의 평안도, 결국엔 진화의 연속선상에 있다.
불완전함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강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진화는 끝나는 지점이 없다. 오늘 내가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루틴을 회복한 일, 그것도 내 안의 진화다.
나는 오늘 ‘진화’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진화는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며 다시 일어서는 오늘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