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새벽의 바람은 한층 더 차게 느껴졌다. 여름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진 듯했고 가을을 건너 초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에 서 있는 듯했다.


서재 창문을 반쯤 열자 싸늘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전날 늦게 잠들었던 탓에 깊은 잠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불면의 밤은 아니었다.


그리고 잠과 꿈에 관한 책을 다시 펼쳤다. 인간이 가장 오래도록 궁금해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해명하지 못한 주제다. 책 속에서 저자는 꿈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동시에 철학적으로 사유했다.


특히 나를 멈추게 한 문장은 꿈을 조정할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이미 실용화 단계에 이른 기술을 통해, 잠들기 전 뇌파를 조작하여 꾸고 싶은 꿈을 주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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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처음 그 문장을 읽었을 때 느꼈던 소름이 다시 되살아났다. 인간이 잠든 사이마저 개입할 수 있는 기술이라니. 그 섬뜩함은 단순히 과학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 가진 마지막 자유의 영역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침범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꿈을 이용해 기억을 지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꿈은 뇌가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단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특정 기억을 삭제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아픈 기억은 지우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이 인간 스스로가 아닌, 기술의 손에 맡겨진다면? 그리고 이어진 문장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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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꿈을 정확히 읽어 냄으로써
의지력으로 통제하는 이가 거의 없는
그 과정의 소유권을
누군가가 지닐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 중에서 - 285age


통제.

이 단어는 언제 들어도 묘하게 차갑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통제한다는 말은 곧 다른 누군가는 그 통제 아래 놓인다는 뜻이다.


꿈을 통제한다는 말이 주는 섬뜩함은 단지 기술의 발달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마저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순간 통제라는 단어가 마치 양날의 검으로 느껴졌다. 한쪽은 자기 절제와 자기 관리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다른 한쪽은 타인의 의지와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적인 힘으로.


병상에 누워 있던 시간에도 나는 통제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내 몸은 의사의 손에, 내 일상은 치료 일정에, 내 시간은 병원의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처음엔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제란 반드시 외부의 억압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의 회복이 더디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마음, 그것 또한 내 안의 또 다른 통제였다. 스스로에게 과한 명령을 내리며 빨리 나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휘둘리던 시간은 결과적으로 회복을 늦추는 또 다른 감옥이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진짜 통제는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인하는 것이라는 걸. 내 감정과 몸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 리듬에 맞춰 나를 다루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 통제였다.


technology-1850021_1280.jpg?type=w1 사진출처: 픽사베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통제하려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삶은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병의 이름 앞에서 무너졌던 순간처럼 말이다. 통제 불가능한 일은 언제든 일어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통제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꿈을 조정할 수 있다는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인간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은 이미 각종 알고리즘과 기계의 도움 속에서 생각과 선택의 일부를 내어주며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남은 마지막 피난처가 바로 의식 없는 시간 즉, 꿈이 아닐까.


그런데 이제 그조차도 누군가의 통제 아래 들어갈 수 있다면 정말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악몽은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artificial-intelligence-2167835_1280.jpg?type=w1 사진출처: 픽사베이


나는 병상에서 몇 번이나 생생한 꿈을 꾸었다. 그 꿈들은 대체로 두려움과 후회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나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꿈속에서 만난 얼굴들,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 나는 꿈은 절대로 통제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른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다시 책을 덮으며 나는 결심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겠다고.


대신 내 마음의 흐름을 인식하고 지금 내 앞에 놓인 시간과 대화하겠다고. 기술이 아닌 의지로 인위가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나를 다스리겠다고.


나는 오늘 ‘통제’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진짜 통제는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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