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빗줄기가 창을 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비와 함께 더욱 깊어진 가을 새벽이었다. 다행히 오랜만에 취한 숙면 덕분에 몸은 가벼웠고 비 내리는 소리와 함께 서재로 향했다.
커튼을 젖히니 거리의 가로등 불빛에 부딪힌 빗방울이 쏟아지듯 흩어졌다. 창가의 공기는 서늘했고 그 공기 속에서 나는 오늘의 루틴을 시작했다.
이번 주에 읽고 있는 잠과 꿈에 관한 책의 저자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방법들 중에서 오늘 내 마음을 붙잡은 문장은 이 한 줄이었다.
“기술과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맞서 싸우는 것은
내가 볼 때 잘못된 접근법이다.
한 가지 이유는 지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술이라는 요정을
결코 병에 다시 접어 넣을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대신 우리는 이 강력한 도구를
우리에게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 중에서 - 468page
이용.
이용은 단순히 ‘활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그 말속에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 나아가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가 숨어 있었다.
이용한다는 말은 능동과 수동의 경계를 동시에 내포한다. 내가 기술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기술이 나를 이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나의 하루를 관리하고 손목의 기기는 수면의 질을 측정하며, 인공지능은 글의 문장을 다듬어준다. 기술은 분명 나에게 편리함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통제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기술은 시간을 절약해주지만 그 절약된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퇴원 후의 회복 과정에서 나는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고, 하루 걸음 수를 기록하며 식단의 영양 성분을 계산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의 의지를 돕는 보조 도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수치는 나의 기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몸이 조금 무거워도 수치가 좋으면 안심했고, 반대로 수치가 나쁘면 몸이 괜찮아도 불안해졌다.
기술을 이용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내가 그 수치의 감정이 좌우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기술을 이용한다는 건 결국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그 도구와 나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이 아닐까.
기술은 결코 악도 선도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을 이기기 위해 싸우거나 반대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지는 싸움’이란 바로 그 맹목의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기술을 거부할 수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다. 다만 그것을 삶에 끌어들이는 선택만이 가능하다.
저자가 ‘기술과 싸우지 말라’고 말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술을 멀리한다고 해서 더 좋은 수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올바르게 이용할 때 인간의 생체리듬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어 워치로 수면패턴을 조절하거나 명상 앱으로 호흡을 다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기술은 적이 아니라 내가 잠시 빌려 쓰는 타인의 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용’이라는 단어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이용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능력, 친절, 혹은 감정까지도 필요에 따라 끌어다 쓰는 일이 있다.
이용당했다는 말은 언제나 상처로 남지만, 조금 생각을 바꾸어 보면 관계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무이용의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용이 상대를 소모 시키는가 아니면 함께 성장하게 하는 가의 차이가 있을 뿐일 것이다. 내가 타인을 이용할 때 최소한 그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용이 아니라 공존이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의 이용은 기술의 이용보다 훨씬 섬세한 균형을 요구한다. 그 균형을 잃을 때 관계는 통제의 도구가 되고, 이용은 결국 서로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반대로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각자의 목적을 존중하며 연결되는 이용은 관계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결국 인간의 모든 관계는 크고 작은 이용의 교환 속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상처 입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리고 함께 살아갈 만큼의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용’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보기로 했다. 지금의 사회에서 누군가를 이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용의 방향이 서로의 성장을 돕는 쪽이라면 그것은 관계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서로의 하루를 이용해 위로를 얻고 서로의 시간을 이용해 다시 일어선다.
이용은 때로 의존이 되고, 의존은 다시 신뢰로 바뀐다. 그렇게 인간은 이용 속에서 관계를 배우고 성숙해진다.비 내리는 새벽,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술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인간관계의 이용은 수치로 남지 않기에 언제나 감정의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용이란 결국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선택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혜. 그것이 진짜 이용의 의미일 것이다.
나는 오늘 ‘이용’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이용은 조종이 아니라 조율이며, 소유가 아니라 공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