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결국 확인한 것은
함께라는 사실이었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68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오늘은 오전 8시 건강검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작은 그보다 세 시간 전, 다시 마셔야 하는 대장내시경 약이었다.


전날 밤과 같은 과정이었지만 새벽이라는 시간대가 더해지자 고역은 배가됐다. 아내와 나는 잠결에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향했다. 500ml의 약물을 삼키고 다시 1,000ml의 정수를 들이켜야 했다.


평소 같으면 아직 깊은 잠에 있을 시간, 아내에게는 더욱 고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 대신 그녀는 늘 그렇듯 담담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레 화장실로 흩어졌고 새벽의 정적 속에 물소리와 한숨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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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면내시경이 예정되어 있어 자가운전이 불가능했다. 택시를 탈까 했지만, 약효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건 위험한 선택이었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혹시라도 중간에 급히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면, 지하철역마다 비치된 화장실이 유일한 안전망이었다. 출근 시간대의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아내와 나는 서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긴장된 표정 속에도 어딘가 모르게 웃음이 비쳤다.


결국 우리는 11정거장을 가는 동안 세 번을 중간에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약은 잊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떠 있었다.


역에서 5분 거리의 병원까지 걸으며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택시 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웃음 속엔 피로와 안도, 그리고 함께 견뎌낸 이른 새벽의 동지애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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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건 이런 순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힘들지만 함께 견디고,

불편하지만 끝내 웃을 수 있는 것.


오늘의 검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미 중요한 시험은 새벽에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도착하자 안내를 받은 대로 옷을 갈아입고, 아내와 함께 검진 대기실로 향했다.


복도 양쪽으로 문이 줄지어 있었고, 각 문 앞에는 대기 의자가 놓여 있었다. 간호사가 한 사람씩 호명할 때마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어깨가 동시에 들썩였다. 작은 긴장감이 공기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내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

“검진 받으러 온 거잖아, 뭐가 그렇게 긴장돼?”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내는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병원에 앉아 있으면 몸이 저절로 굳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럴 만했다. 이곳은 아내가 뇌출혈 수술을 받았던 병원이었고, 약 두 달간의 입원 기간 내내 그녀에게는 고통과 공포, 그리고 간절함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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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아내에게 병원이란 단어는

늘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혼자 병원을 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고, 이번 검진도 의무검진 대상자라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했다. 단순한 검사라 괜찮을 거라고, 함께 하자고, 여러 번 말하고 나서야 겨우 동의했다.


이상하게도 병원이란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단단히 움켜쥔다. 무심한 하얀 벽, 차가운 공기,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호출음들은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그 마음을 안다. 아내보다는 덜하지만, 나 또한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깨 근육이 살짝 굳는 걸 느낀다. 마치 몸이 기억하는 두려움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두려움의 자리에 ‘함께’라는 감정이 있었다.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이 순간,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어쩌면 회복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병원을 두려움의 장소로만 기억하던 사람이 다시 그곳을 마주하고, 그 공간에서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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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검진은 단순한 건강검진이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맞이한

또 하나의 ‘확인’의 시간이었다.


초음파와 특수검진을 마치고 마지막 순서인 대장내시경을 위해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차가운 알코올 냄새와 함께 얇은 바늘이 피부를 스치는 순간, 익숙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의료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형광등 불빛이 조금은 눈부셨다. 간호사가 내 팔에 우윳빛깔의 주사약을 연결하는 것이 보였다. 늘 그렇듯 마음속으로 다짐해보지만 그 다짐은 늘 몇 초를 넘기지 못했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검사가 끝나 있었다. 머릿속은 아직 반쯤 안개 속에 잠긴 듯했고, 주변의 소리가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투명한 주사액 한 줄기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30분의 시간을 완전히 비워버린다. 가끔은 이 주사가 무섭게 느껴진다. 아주 작은 주사기 하나가 의식과 감각, 나의 존재마저 잠시 꺼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내가 그 시간 동안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눈을 감는 그 순간부터 깨어나는 순간까지, 나를 맡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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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간호사들의 손에 내 몸이,

어쩌면 내 생명이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투병생활 중 불면의 밤이 길게 이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해서 못 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잠을 자는 것이 두려웠었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날들이었다. 당시에 이 주사를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 묘한 안도와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단 몇 초 만에 잠에 빠지게 하는 마법 같은 약, 그러나 그것이 통제되지 않은 채 쓰인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만으로도 당시 몸이 굳어졌었다.


작은 주사기 하나, 그 안의 액체 몇 밀리리터가 인간의 의식과 생명을 넘나들게 한다는 건 결국 ‘믿음’의 문제다. 믿지 않으면 불안하고, 믿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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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늘의 검진은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검진이 모두 끝나고 나는 먼저 회복실 밖으로 나와 아내를 기다렸다. 잠시 후,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몽롱한 걸음으로 아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의자에 앉은 그녀는 아직 정신이 덜 깬 듯했지만, 나를 보자 안도하듯 짧게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긴장이 풀렸다.


검진이 끝난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서는 작은 식사를 준비해 두었다. 녹두죽 한 그릇. 특별할 것 없는 한 끼였지만, 그 안엔 고단한 검진을 마친 이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죽을 떠먹기 시작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몽롱한 정신에도 배는 정직했다. 식사를 마친 뒤, 병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맞이한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보일러를 미리 켜 두었기에, 차가운 외풍에 시달린 몸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잠이 쏟아진다”는 말을 남기고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단지 잠시 눈을 붙이려던 것이었는데, 눈을 떴을 땐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져 있었다. 시계는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든 사이 하루의 절반이 흘러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밀려온 허기짐에 우리는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식탁 위에 놓인 간단한 음식들 앞에서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결과가 괜찮다니 다행이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정확한 검진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내시경하며 용종을 떼어낸 것이 없고, 초음파상에 이상 없다는 말만으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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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단지 검진의 날이 아니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긴장을 견디고,

안도의 숨을 함께 내쉰 하루였다.


아내와 나, 각자의 몸을 확인한 하루이지만, 결국 확인한 것은 ‘함께’라는 사실이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병원에서, 같은 검사를 받고, 같은 안도 속에 돌아온 평범한 하루가 그 어떤 특별한 날보다 더 고맙게 느껴졌다.





이전 29화10.29.그래도 오늘의 긴 밤이 그리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