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재앙을 막아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할배돌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70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아침 공기가 다시 차가워졌다. 11월의 첫날, 창밖에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며 겨울을 준비하라는 계절의 알림처럼 느껴졌다.


지지난주는 볼링 시합, 지난주는 완주 여행으로 바빴던 아내는 어제 잠들기 전 내게 “내일은 절대로 깨우지 말라”는 특명을 내렸다.


조용히 안방 문을 닫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은 뒤 서재에 앉아 <오만과 편견>을 펼쳤다. 책의 두께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작품이었다.


오전 11시, 독서를 마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11월의 첫날, 오늘도 가볍게. 그러나 꾸준히.”


엘리베이터를 내려 출입문을 나서려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어디 가요?”

“운동 가는 중이에요.”

“그럼 나도 갈게요. 기다려요.”

잠시 뒤, 간단히 옷을 차려입은 아내가 현관으로 내려왔다.


몇주 늦잠을 자지 못했더니 오히려 잠이 안 온다며 투정하듯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아내와의 만보 걷기 동행이 시작되었다. 11월의 첫날, 우리는 함께 가을길을 걸었다.


차가운 바람에 낙엽은 산책로를 덮고 있었고, 갈색의 잎사귀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앞서 걷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작년 이맘때, 퇴원 후 재활을 위해 함께 걸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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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아내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건강을 되찾은 듯 씩씩하게 걷는 모습.


나도 모르게 내년 이맘때를 상상했다. 그때의 나는 완치라는 단어를 품고, 오늘처럼 이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늦가을의 하늘을 맑고 투명했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은 하늘과는 전혀 다르게 불어왔다.


아내는 연꽃습지 근처에서 바람이 너무 세다며 혼자 돌아가겠다고 했다. 혼자 들여보내자니 마음이 걸렸고, 여기서 그만두기엔 너무 이른 거리였다. 그때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금호강 초입의 ‘금강행복마을’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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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행복식당

대구광역시 동구 금강로 235 금강행복마을협동조합식당


예전엔 주말마다 일부러 찾아가 두부김치에 동동주를 마시던 단골집이었다.

“그럼 우리 자주가던 식당 까지만 같이 가서, 따뜻한 국수나 한 그릇 먹고 가는건 어때?” 하고 물었다.

내 제안에 아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늘 혼자 걸으며 식당을 지날 때 마다 아내와 나눴던 추억을 떠올렸였다. 그런데 오늘은 1년 만에 함께 걷게 식당의 문을 열게 되었다.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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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당연히 두부김치와 동동주를 주문했겠지만, 오늘은 잔치국수와 칼국수를 시켰다.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국물에 얼었던 몸이 서서히 녹았다.


가격은 조금 올랐지만 맛은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함께한 식사는 그 시절의 따뜻한 온기를 그대로 불러왔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예정된 만보 코스 대신 중간의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따뜻한 국물에 데워진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다닐 때 아니 그동안 수없이 지나치던 길이었는데, 오늘 새삼스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골목 끝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할배돌’이라 적힌 조형물과 그 곁을 두그루의 나무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이 길을 지나며 봤던 돌이었지만, 그 의미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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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반복된 사고를 막기 위해

옹달샘을 막고 기도를 올린 후,

행복이 가득했다.


벽에 새겨진 글씨와 함께 서 있는 돌과 나무를 보며 아내와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 이야기를 읽고 잠시 웃었다.우리 두사람의 웃음의 의미는 같았다.


마치, 나와 아내를 위해 적혀진 글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돌은 나와 아내에게 꾸짖듯이 말을 던지는 듯 했고 그 소리가 머릿속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찾아왔니?”


멀쩡했던 몸으로 수없이 지나다닐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아프고 나니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는 지난 2년간 병마와 싸워온 우리에게 이제는 평안하게 보호해 주겠다는 믿음과 희망을 전해주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 어딘가가 따뜻해졌다. 병을 앓으며 잃은 것보다, 그로 인해 새롭게 얻게 된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우리가 걸어온 길 위에는 고통의 그림자도 있었지만, 그 위로 덮인 낙엽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감사가 있었다.

차가운 강바람 속에서도 그런 마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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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괜찮다, 정말 잘 버텼다’


그 말이 마음 속으로 들려오는 순간, 나는 문득 이 길이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우리 부부가 다시 살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이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 대신 주변을 돌아보는 법을 가르쳐준 것 같았다. 아픔이 끝나고 남은 자리엔, 이토록 조용하고 깊은 삶의 온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예상치 못한 동행, 따뜻한 국수 한 그릇, 그리고 오래된 돌 앞에서의 짧은 미소.

그 모든 것이 회복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