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딸과 통화, 가족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사랑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71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11월 늦가을이 아닌 초겨울의 날씨가 찾아왔다. 바람이 다시 세고 차가워졌다. 운동복을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몸의 회복은 여전히 더딘 편이지만, 꾸준히 움직인다는 사실 하나로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였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와 간단한 점심을 챙겨먹었다.

cat-9704391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오늘은 서로 아무 약속이 없는 하루였다. 온전한 휴식을 보내기로 약속을 했다.


책상에 앉아 <오만과 편견>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530페이지의 긴 여정을 끝까지 따라온 뒤 책장을 덮었을 때 묘한 허전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책의 마지막 문장보다 오래 남은 건,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그 장면이었다.


문득 작년 11월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아직 아픈 줄 몰랐다. 아내의 회복을 지켜보며 작은 증상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던 시기였다.

bridge-507543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늦가을의 떨어지는 낙엽은 당시에 내겐

낭만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다시 아플까 봐, 다시 무너질까 봐, 푸른 잎이 다시 돋아나지 않을까 봐, 아내의 걱정속에 살아가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돌보던 사람이 돌봄을 받는 자리로 바뀌었다. 같은 계절이지만, 서로의 위치가 뒤바뀐 늦가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다.


올해의 가을은 이상하리만큼 더 차갑다. 따지고 보면 매년 가을이 전년보다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 내면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의 불안이 조금씩 떠오르고, 그 불안은 차가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내곁에서 고구마를 먹으며 웃고 있는 아내의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woods-203670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우리는 서로의 차가운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걸.


오후에 딸과 전화 통화를 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던 날, 딸이 병원까지 데려다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검진 전날, 감기에 걸려 전염될까 봐 못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아쉬웠지만 그저 가볍게 감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딸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어 저녁 약속을 위해 통화를 하며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딸은 감기가 거의 다 나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괜찮았냐고 묻자, 그제야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그날 밤엔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flu-2764634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혼자 아프고, 혼자 참고 있었다는 말에 순간 목구멍이 막혀왔다. 화가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농담 섞인 말투로 다그쳤다.

“그렇게 아팠으면 말을 해야지. 혹시라도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랬냐.”


아직 완쾌되지 않은 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어서 웃으며 말했지만, 속에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딸은 담담히 말했다.

“아프다고 해도 누가 뭘 해줄 수 있겠어. 괜히 걱정만 시킬까 봐.”


그 말을 듣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나보다 더 화를 냈다.

“그 정도로 아팠으면 제일 먼저 가족한테 연락했어야지. 혼자 참고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딸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제 거의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웃으며 말하는 딸에게 생일날 보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딸이 아팠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아이가 아파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people-2604432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부모가 모두 아픈 마당에

자기 아픔을 얘기하기 미안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딸의 마음을 안다. 작년과 올해 우리가 견뎌온 투병의 시간은 아이에게도 상처였을 것이다. 그녀의 침묵은 어쩌면 배려였고, 그 배려가 나에게는 더 큰 미안함으로 돌아왔다.


부모로서, 아픈 몸을 추스르며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쩌면 딸은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지도, 그저 말 그대로 누가 대신 아파줄 것도 아니고, 좀 더 심해지면 그때 말하려고 했던 걸지도, 그것은 아픔을 견디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통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man-7649485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이해와 책임, 그리고 배려의 이름으로

자신을 다독이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나 스스로 위안 삼듯 생각을 해보았다.


순간, 그런 면에서 보면 오늘 읽은 <오만과 편견>의 이야기처럼, 나의 반응이 어쩌면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아직 아이일 거라 생각하며 다치지 않게 품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사실은 이미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 어른에게 하는 지나친 보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 무겁게 나를 짓누르듯 그 무언가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 참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딸의 담담한 목소리가 자꾸 귀에 남았다.

crying-african-man-4670799_1280.jpg?type=w1 사진 출처: 픽사베이

나이가 들고 부쩍 늘어난 눈물이 왈칵 쏟아져 서재로 조용히 서재로 향했다.


아내도, 딸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 서서 서로를 걱정하며 이렇게 하루를 건너고 있다.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남은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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