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72일차의 기록
다시 찾아온 늦가을의 추위는 차가운 공기마저 유리창을 두드리게 만들었다. 뉴스에서는 한파라는 단어를 덧붙이며 겨울의 초입을 알리고 있었다.
잠시 명상을 위해 나선 베란다에서 손끝이 시릴 만큼의 냉기가 전해졌다. 잠깐의 찬 공기가 머릿속까지 파고들자,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서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이번 주 나의 생각을 정리해줄 새로운 책 한 권을 고르기 위해 책꽂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멈췄다. 책상 위 달력의 ‘11월’이라는 숫자 위로 겹쳐 보이던 한 권의 책.
바로 <뉴업의 발견>이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작년 7월경이었다. 27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 시점.
물론 퇴사의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었지만, 퇴사 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단단히 다잡게 해준 책이었다.
인생의 한 챕터가 닫히던 그 시기에 새로운 나를 발견해야 하는 일은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된 긴 시간들이었고, 이 책은 그 시간 위에서 길잡이처럼 함께 있었다.
오늘 다시 그 책을 펼치며 발견이란 결국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잊고 있던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창문 너머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멈추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퇴원 후 지난 72일 동안 나는 매일 조금씩 회복의 길을 걸어왔다.
처음엔 몸의 회복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마음의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회복의 과정 속에서 발견은 앞으로 살아갈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의 나는 새로운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다시 발견하는 중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지켜내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새 계절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아내는 옷장 속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겨울 니트를 꺼내며 말했다.
“이제는 얇은 긴 옷은 입을 시간도 없이 겨울 옷을 입어야 하네, 계절이 너무 빨라”
그리고 아내의 말 속에서 계절이 성급하게 간다는 표현보다는 이제 사계절 중에 하나의 계절이 사라졌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터운 옷을 꺼내 입고 목도리까지 챙겨 현관을 나서는 두사람의 뒷모습을 보니 정말 한 겨울이 찾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상에 앉아 지난주 완독한 <오만과 편견>의 서평을 작성했다. 두께만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책이었다.
처음엔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의 사랑 이야기로만 읽히던 책이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가장 깊게 와닿았던 건, 다아시나 엘리자베스의 사랑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의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결국 변화는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투병의 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병을 이기려 하기보다, 그 안에 갇혀 있던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먼저 인정해야 했다. 몸이 약해지는 만큼 마음은 단단해졌고, 편견처럼 나를 가두던 생각들도 조금씩 풀려나갔다.
책 속 인물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화해하며 성장하듯, 나 또한 내 안의 오만함과 싸우며 다시 회복의 길 위에 서 있다. 오늘의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회복의 길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속에서 내 시선은 정작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들의 욕망, 허세, 어리석음,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인간적인 따뜻함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으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없는 서평이 되었다. 그들 곁에서 미묘하게 부딪히며 이야기를 완성시킨 여섯 명의 조연들이야말로 이 소설의 숨은 서사였다.
이야기를 정리하며 오전 시간을 모두 보냈다. 창문 너머로는 바람이 여전히 차가웠고,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책 속 인물들의 대사를 천천히 다시 음미하듯 써내려 갔다.
추워진 날씨보다 더 나를 망설이게 한 것은 거센 바람이었다. 결국 야외 운동은 포기하고 실내자전거에 발을 올렸다. 이번 달부터는 운동의 강도와 시간을 조금 더 높이기로 했다.
단순히 체력을 되찾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다시 단단히 세우기 위한 약속이었다.
페달을 밟을수록 숨이 가빠지고 호흡이 빨라졌다. 그 박동이 내 안의 회복력을 깨우는 듯했다. 물론 아직 몸은 완전히 따라오지 못한다.
조금씩 높여가는 운동의 단계만큼 회복 속도도 함께 높아지길 바라지만, 지금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바람이 현실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나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