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76일차의 기록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가을 새벽, 서늘한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베란다 문턱에 잠시 서서 고요한 어둠을 바라보다 익숙한 자리인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4월,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단어로 쓰는 생각들’이 어느덧 7개월의 시간을 지나왔다. 오늘은 125번째 글, 그 단어는 습관이었다.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언젠가 이 단어를 다루게 될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지만, 막상 다다르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아마도 ‘습관’이라는 것은 쓰는 일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삶의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는 이름의 카테고리를 만든 이유는 단순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을 그저 흘려보내기엔 아까워서였다.
새벽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오히려 졸음이 밀려왔고 그래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을 시작했다.
낯선 문장보다 이미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문장을 다시 곱씹는 일이 더 깊은 사유를 불러왔다.
그 시절엔 내 안의 병을 알지 못했다. 잠이 부족하면 면역이 떨어진다는 말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시간을 쪼개 쓰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결의이자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몸이 무너진 뒤에야 깨달았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그 의지가 깃들 수 있는 몸이라는
그릇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잠을 줄이려 하지 않는다. 병 이후의 삶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수면은 사치가 아니라 회복의 전제라는 점이었다.
최소 8시간의 잠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알려주었다. 이전처럼 5시에 일어나려면 전날 9시에 잠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삶 속에서 그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수면시간을 조절하되 줄이지는 않기로. 밤 12시이전에 자는 것은 하루를 낭비한다는 생각도, 하루의 시작을 남들보다 일찍 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일찍 잠들어도, 좀 늦게 깨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은 나에게 필요한 쉼과 정리의 시간일 뿐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그렇게 의지에 눈이 가린 무책임한 습관이 아닌, 미래를 위한 차분한 습관을 다시 세우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하루를 열었다.
오전의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따가울 정도로 선명한 가을 햇살이 단풍의 색을 더욱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람조차 잠잠한, 계절의 순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날씨였다. 연꽃습지를 지나며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몇 개의 감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감은 이미 수확되어 있었지만, 가지 끝에는 까치를 위한 붉은 몇 개가 남아 있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감을 모두 따지 않고 남겨둔 이유를 안다.
아직 남쪽으로 날아가지 못한 까치들이 굶주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남긴 나눔의 방식이었다.
풍요로움은 가득 찰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눌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는 걸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예전처럼 강인한 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작은 여유를 남겨두는 그 누군가의 마음처럼, 나 또한 내 안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지 않으려 한다.
남겨두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회복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가을 햇살은 또한 습지 인근의 논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늦가을까지 추수되지 않은 벼들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곧 다가올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논의 모습은 마치 노란 파도의 물결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한 해를 묵묵히 살아낸 시간들의 결실처럼 보였다.
오늘은 절기상 겨울의 문이 열린다는 ‘입동’이다. 주말에 비가 온 뒤 다시 추워진다는 일기예보를 떠올리며, 아마도 이번 주말이면 연꽃습지 주변의 논도 드디어 추수를 시작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겨울의 첫걸음을 맞이하는 오늘, 이 황금빛 풍경이 마치 계절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눈앞에 펼쳐진 이 계절의 마지막 빛깔을 카메라에 담았다.
순간의 장면이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기다림과 순환의 아름다움이 고요히 깃들어 있었다.
습지의 연꽃도, 논의 벼들도,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의 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연은 늘 그렇게 끝을 준비하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었다.
잎은 떨어지지만 땅으로 돌아가 다시 흙이 되고, 벼는 고개를 숙이며 한 해의 수고를 마무리하고, 감은 까치의 겨울을 위한 선물이 된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다시 태어날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인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한다.
그러나 끝이라고 믿었던 순간이
새로운 시작의 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 안에서 조금씩 배우고, 조금씩 단단해진다. 병을 겪으며 깨달은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잃어버린 것만큼 새롭게 얻는 것이 있고, 멈춰 선 만큼 더 깊이 보이는 것이 있다.
겨울이 찾아온다는 입동의 오후, 금호강은 눈앞에 두고 잠시 생각했다. 이제 가을은 천천히 물러가고, 겨울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뒤에는 또다시 봄이 찾아올 것이고, 그 봄은 결코 어제의 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습관처럼 걷고, 느끼고, 기록하며,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내일의 봄을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살아가는 사람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