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다. 아직 해가 오르기 전의 시간은 언제나 내 몸보다 마음을 먼저 깨운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시간에 나는 자연스럽게 삶의 속도를 낮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마저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다.
때 이른 강한 추위가 덮친 지난주 마음 따뜻한 책 속의 문장을 통해 사유를 나누었다.
그리고 날이 조금 풀린 지금 조금은 어둡지만 내면의 깊은 사유를 끌어내는 한주를 만들기 위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책을 펼쳤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43page
적응.
1. 주어진 상황에 알맞게 행동, 생각, 상태를 조정하는 것.
2. 생물이나 인간이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기능이나 생활 방식을 조절하는 일.
저자인 빅터프랭클이 인용한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은 겉으로 보면 인간의 강인함을 찬미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은 고통과 침묵이 숨어 있었다.
내 삶 속에서 적응도 그렇게 찬미로 정리된 단어가 아니었다. 적응은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에 더 가까웠다.
개념으로서의 적응은 유연함을 뜻한다. 환경이 바뀌면 나도 바뀌는 능력, 계획이 틀어지면 다시 방향을 조정하는 힘, 이론으로 보면 적응은 성숙하고 합리적인 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의 적응은 종종 나를 깎아내는 과정으로 다가왔다.
익숙했던 것을 내려놓아야 했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일상과 작별해야 했으며 이전의 나를 조금씩 포기해야 했다.
내게 적응은 병과 함께 시작되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의 환경은 급격히 바뀌었다.
치료라는 이름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전의 기준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체력도 일상의 리듬도 생각의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일들이 하나씩 어려워졌다.
대신 아주 다른 변화가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들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 나는 어쩌면 적응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적응은 패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태를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버텼다.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이건 잠깐이며 곧 끝날 것이라는 다짐을 통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돌아가는 길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새로 익혀야 할 길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부터 적응은 조금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적응은 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
이전의 나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지금의 몸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감정의 층위에서 적응은 복잡했다. 체념과 수용은 늘 한 끗 차이였다. 어떤 날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다가도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질문은 아무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것 또한 적응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응은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예전처럼 쉽게 흥분하지 않게 되었고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졌다. 대신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약해진 대신 다른 오감은 더 선명해졌다.
내가 치른 적응의 대가이자
얻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적응을 미화하지 않는다. 적응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단어가 아니다. 적응에는 고통이 있고 침묵이 있고 설명되지 않는 밤들이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듯 우리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묻지 말아 달라는 말에는 이유가 있다.
그 방법은 말로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개인적이고 때로는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응을 선택한다. 아니 선택한다기보다 적응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다.
적응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나를 오래 살게 한다.
그런면에서 적응은 완성이 아니라 진행형이며,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어떤 날은 잘해내고 어떤 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적응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는 ‘적응’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적응은 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