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과 이어지며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는 이른바 ‘인생책’ 이야기를 나는 숱하게 들어왔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말 앞에서, 솔직히 나는 늘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아직 내 삶에서는 그런 극적인 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직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 역시 내 인생의 방향을 조금은 달리 보게 해 줄 책을 만나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독서를 이어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이라는 말은
점점 공허하게 느껴졌다.
삶은 한 번의 계시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는 선택과 포기의 누적이라는 생각이 더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부인할 수 없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내 부족함을 조용히 채워 줄 한 권의 책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희미하지만 집요한 기대였다.
그것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끝내 숨길 수 없었던 내 내면의 욕심이기도 했다.
존경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인생책을 말할 때, 그 책은 대개 의도적으로 찾은 것이 아니라 우연처럼 찾아왔다고 말한다.
어떤 추천도, 어떤 유행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선택된 한 권.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책을 펼쳤다.
그리고 며칠 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주말에 무심히 첫 장을 펼쳤을 뿐인데, 그 순간만으로도 나는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어쩌면 나의 인생책이 될지도 모른다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나는 보통 일기에는 책의 내용을 길게 쓰지 않는다. 서평으로 옮길 이야기와 일기의 자리를 분리하고 싶어서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월든>을 읽는 동안,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무언가가 나의 가슴을 향해 달려왔다.
그것은 조용한 울림이 아니라, 기적 소리를 울리며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속도로 돌진해 오는 빠른 기차와 같았다.
작가의 문장을 읽는 순간 순간 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무엇에 묶여 숨이 가빠졌는지를 한꺼번에 떠올렸다.
병을 겪고 난 뒤에야 비워진 것들, 내려놓았기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삶의 결.
<월든>은 내게 새로운 사상을 가르치기보다, 이미 내 몸과 마음이 겪어온 시간을 언어로 확인해 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강렬했다.
아직 책의 중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미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느끼고 있다. 이 책은 단번에 읽고 덮어둘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책상 위에 두고,
내가 흐트러질 때마다 다시 펼쳐
나를 돌아보게 할 책이라는 것을.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의 태도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고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바로잡는 일이라면, <월든>은 이미 충분히 그 자리에 와 있다.
어쩌면 인생책이란 삶을 새로 만들어 주는 책이 아니라, 내가 이미 살아온 삶을 낯설게 비추어 주는 책인지도 모른다.
<월든>은 오늘의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병을 지나온 몸으로, 다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책이 나의 인생책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말해보고 싶다.
책 속의 문장에 붉은 펜으로 밑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 플래그를 붙였다.
그렇게 표시된 문장들이 너무 많아 오늘의 일기 안에 다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서평에도, 따로 적어둘 남은 이야기에도, 모두 옮겨 적기에는 이 책은 나에게 너무 많은 문장으로 달려왔다. 그래서 오늘은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다 말하려 하지 않고, 그중에서도 유독 가슴 깊숙이 파고든 단 한 문장만을 붙잡아 보기로 했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메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중에서 - 147page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책을 덮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쫓기듯 살아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소진하고,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굶어 죽을 각오부터 했던 날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지금의 나를 끝없이 몰아붙였던 시간들이 있었다. 소로의 문장은 나를 꾸짖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고개를 숙이고 혼나고 있었다.
병을 겪고 난 뒤, 나는 삶의 속도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빨리 가는 것이 능력이 아니고, 많이 쌓는 것이 안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월든>은 그 깨달음을 새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이미 내가 겪어온 시간을 조용히 정리해 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정확하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이 미덕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내일’이 결국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병실에서 배웠다.
오늘 천 바늘을 꿰매느라 정작 오늘의 숨결과 감각을 놓쳐버린 삶이 과연 지혜로운 삶일까.
소로의 문장은 질문의 형태로 남아 있었고,
그 질문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아직 <월든>을 다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느낀다.
이 책은 내 삶을 바꾸라고 등을 떠미는 책이 아니라, 내가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말로 정리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확한 문장으로 불러내 주는 책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라, 내 삶의 속도가 다시 빨라질 때마다 꺼내어 나를 붙잡아 줄 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다. 그리고 그 멈춤이 낭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 순간들이 쌓여,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인생책’이라는 단어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쓸 수가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월든>은 읽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문장을 덮어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해도, 마음은 자꾸만 책이 머물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기에는 이 책이 남긴 여운이 너무 컸고, 오늘의 나는 그 여운을 정리할 언어를 아직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어쩌면 지금은 말로 덧붙이는 시간보다,
조용히 안으로 가라앉히는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내게 던진 질문들은 아직 답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충분히 머물러 달라고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의 일기는 여기까지로 충분하다.
한 권의 책 앞에서 아무 말도 더 보태지 못하는 날.
그 침묵조차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 <월든>을 통해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