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드리우기 전 새벽. 서재의 공기는 창밖 밤의 시간을 놓지 못한 채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차갑다.
책상 위 스탠드만이 작은 섬처럼 빛을 밝히고 있다. 따뜻한 차 한잔으로 차가워진 몸을 데우며 움직이지 않는 시간처럼 생각을 더 깊고 멀리 보낸다.
회색 빛이 감도는 한권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책장을 넘기다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다.
읽는다는 표현보다 붙잡혔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문장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쉽게 지나가게 두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나를 정확히 겨냥한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깨달은 것인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 71page
초월.
1. 시간, 공간, 조건, 능력등의 제약을 넘어서는 것.
2. 일반적인 기준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상태
3. 현실적 경험이나 인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차원
초월은 시간과 공간과 조건과 능력의 제약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또한 일반적인 기준과 상식을 뛰어넘는 상태이며 현실적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차원이라고 설명된다.
나는 그동안 초월이라는 단어를 나와는 먼 개념으로 여겨왔다. 수행자나 철학자의 언어혹은 종교적인 깨달음의 영역 정도랄까.
그리고 문득, 오늘 이 초월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의 문제로 옮겨 놓고 싶어졌다.
빅터 프랭클은 관계의 초월을 이야기했지만 오늘 나는 타인을 향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초월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도 나를 다시 세우는 힘에 관한 이야기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오늘을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다.
우리는 초월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불가능의 영역으로 밀어놓는다.
초월은 타고난 재능의 문제이거나 극소수의 위인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의 단어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초월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삶에서 초월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게 되었다. 초월은 도약이 아니라 선택에 가깝다.
더 나은 상태로 단번에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조건을 핑계로 삶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분명한 한계를 만났다. 체력의 한계, 회복의 속도, 이전과 같은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그 앞에서 나는 자주 좌절했고 자주 비교했고 자주 과거의 나를 불러왔다.
그때마다 삶은 나에게 물었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나는 초월이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초월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삶을 포기하지 않는 다짐, 조건이 바뀌었으면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마음들 그것이 내가 이해한 초월이다.
우리 사회는 한계를 극복하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한계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한계를 만나는 순간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한다. 초월은 불가능하다는 말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초월은 한계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한계를 전제로 다시 삶을 설계하는 일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능한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기술에 가깝다.
예전의 나는 초월을 마치 도전에 대한 결과의 의미로 생각하며 도달해야 할 어떤 상태의 끝만 보며 달려가는 것으로 이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초월을 과정으로 이해한다.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선택이 반복될 때
비로소 초월은 결과처럼 드러난다.
그래서 초월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초월이라는 단어 앞에서 너무 겁을 먹는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초월이란 처음부터 가능한 상태로 출발하지 않는다.
초월은 늘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초월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다.
나는 이전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의 속도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오늘의 조건 속에서 가능한 만큼의 최선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 선택이 반복될 때 나는 서서히 다른 지점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월한다는 것은 극적인 변화가 아니다. 오히려 외부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부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생긴다.
포기하지 않는 나.
비교하지 않는 나.
어제의 나와만 경쟁하는 나.
이런 나와 마주하는 태도가 쌓일 때
삶은 다른 결을 갖기 시작한다.
나는 초월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잃었는지에 머무는 시선에서 무엇을 아직 선택할 수 있는지로 시선을 옮기는 이동이 바로 초월의 시작이다.
우리 사회가 초월을 불가능한 말로 만들어버린 이유는 어쩌면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월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더 크게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정체라는 것을.
초월은 성공의 언어가 아니다.
초월은 생존의 언어다.
조건이 바뀐 삶 속에서도
나 자신을 끝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이다.
나는 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선택한 초월이다.
새벽의 서재에서 나는 다시 책을 덮는다. 어둠은 여전히 깊지만 이 어둠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안다.
초월은 멀리 있는 단어가 아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가장 현실적인 태도다.
나는 ‘초월’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초월은 불가능을 뛰어넘는 단계가 아니라 한계를 이유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