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어두운 새벽, 창밖의 공기는 밤과 아침 사이에 머물러 있었고 서재는 늘 그렇듯 오늘도 서늘하고 조용했다. 짧은 명상을 마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쥔 채 책상 앞에 앉았다.


이 시간만큼은 하루의 속도가 나를 앞서가지 않는다. 숨이 고르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오늘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펼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새벽에 읽는 이 문장들은 늘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고통에 대해 쓰인 문장임에도 이상하게도 이 책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견디라는 명령이 아니라 이해하라는 요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번 유추해 보자.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79page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고통의 크기가 아니라 고통이 채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단어가 바로 밀도였다.


밀도.

1. 어떤 물질이 일정한 부피 안에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정도.

2. 사물이나 현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모여 있는 정도.


오늘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밀도는 부피와 무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공간이라도 무엇으로 채워졌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든다는 것이다.


가벼워 보여도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고 작아 보여도 하루를 통째로 점령하는 감정이 있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크기가 아니라 밀도로 다가온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비교한다. 누가 더 아픈지 누가 더 힘든지 말없이 저울에 올린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의 문장은 그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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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언제나 그 사람의 의식과 영혼을 가득 채운다.

그 순간의 고통은 늘 자신의 전부를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병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려 애썼다. 아직 견딜 만한지 더 나빠질 여지가 있는지 숫자와 단계로 나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를 압도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감정의 밀도였다.


하루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통증이 심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이 엉키는 날들이다.


그날의 고통은 크지 않았을지 몰라도 내 의식을 빽빽하게 채웠다. 아무 생각도 들어올 틈이 없을 만큼 고통은 조밀했다.


밀도가 높은 고통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계속 무게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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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들어하는지 왜 지쳐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설명되지 않는 고통은 늘 혼자가 된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고통을 판단하려는 습관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크다고 말할 수 없는 고통도 충분히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의 아픔을 들을 때 더 이상 크기를 묻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 고통이 얼마나 밀도 있게 그 사람을 채우고 있을지를 상상해보게 되었다.


말이 적어도 웃고 있어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겹쳐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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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밀도는 시간과도 닮아 있다.

짧은 순간이 길게 남고

사소한 계기가 깊은 흔적을 남긴다.


치료의 시간 동안 나는 하루하루를 다르게 경험했다. 같은 하루라도 어떤 날은 비어 있었고 어떤 날은 너무 빽빽해서 숨이 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밀도는 고통에만 머물지 않았다. 회복의 시간에도 밀도는 존재했다. 작은 기쁨 하나가 하루를 가득 채우는 날들이 있었다.


평범한 식사와 산책과 대화가 이전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왔다. 삶의 밀도가 달라진 것이다.


아마도 고통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뎌졌던 감정의 층을 다시 드러낸다.


그래서 아픔을 지나온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쉽게 흔들리고 쉽게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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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남긴 것은 상처만이 아니라

밀도를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이제 나는 고통을 서둘러 밀어내지 않으려 한다. 물론 여전히 피하고 싶고 두려운 감정이지만 그것을 억지로 작게 만들려 애쓰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 이 감정이 얼마나 촘촘하게 나를 채우고 있는지 조용히 바라본다.


밀도가 높을수록 삶은 느려진다. 빨리 판단할 수 없고 쉽게 결론내릴 수 없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만나게 된다.


고통이 나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고통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의식을 채운 무엇이었다. 그 밀도 속에서도 그는 의미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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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내 삶의 고통이

어떤 의미로 채워질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밀도를 외면하지는 않으려 한다.


어쩌면 삶은 점점 더 밀도의 문제로 이동하는지도 모른다. 많이 가지는 삶보다 얼마나 깊이 경험하는지가 중요해진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줄일 수 없다면 다르게 채워야 한다. 이 새벽의 시간처럼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순간도 그렇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내 안에서는 많은 생각이 겹겹이 쌓인다.


이 고요한 밀도가 오늘 하루를 지탱해줄 것임을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밀도’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밀도란 삶이 얼마나 많이 채워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가득 채웠는가에 대한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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