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어둠은 계절이 변함에 따라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창밖은 고요했고 불이 꺼진 거실에는 냉장고의 미세한 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아침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책상 앞에 앉아 호흡을 고르며 어둡고 차가운 서재의 분위기를 한권이 책과 함께 따뜻한 온기로 데우는 의식을 시작했다.
비록 책의 내용은 싸늘하고 처참하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만들어주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후반부를 펼쳤다.
그리고 긴장은 피해야 할 감정이라는 오랜 믿음이 이 문장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죽음의 수용소중에서 - 158page
긴장.
1. 어떤 자극이나 상황에 대비하여 근육이나 정신이 굳어 있는 상태.
2. 서로 대립하거나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분위기가 팽팽한 상태.
3. 물리적으로 잡아당겨 팽팽하게 함.
죽음의 수용서에서 빅터 프랭클은 긴장에 대한 나의 관점을 다르게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 오히려 나를 바로 세우는 문장이었다.
이미 이룬 것과 앞으로 이뤄야 할 것 사이, 지금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놓인 간극, 그는 그 사이의 당김을 긴장이라 불렀다.
사전적 의미의 긴장은 굳어 있음이다.
대비하는 상태이며 팽팽한 분위기이고
잡아당겨 놓은 상태를 말한다.
이 정의들만 놓고 보면 긴장은 분명 불편한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늘 말한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편하게 생각하라고.
나 역시 불과 얼마 전까지 아내와 병원으로 가는 길에 긴장하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그 말 속에는 사랑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긴장을 없애고 싶다는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긴장이 사라지면 불안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오늘 이문장을 보며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정말 긴장은 없어져야 할 감정일까? 치료의 시간 속에서 나는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을 떠올려 본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때, 더 이상 다음 일정이 없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마음은 가벼워지기보다 텅 빈 느낌에 가까웠다.
아무 것도 당기지 않는 상태였으며 오히려 그래서 앞으로 향해야 할 방향이 흐려진 상태였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긴장은 생존의 감정이었다. 잔뜩 몸을 움추리고 불안이 가득한 공포의 상태가 아니라 방향의 감각이었다.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 사이를 이어주는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
그 실이 완전히 끊어질 때 인간은 무너진다. 너무 당겨지면 아프지만 완전히 느슨해져도 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투병의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긴장. 수치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긴장.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긴장 덕분에 하루를 더 정성스럽게 살았다.
물 한 컵을 마시는 일. 햇볕을 쬐는 일. 짧은 산책을 나서는 일. 긴장은 나를 현재에 붙들어 두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긴장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였다. 속도는 빨라졌고 선택은 늘어났다.
쉬지 않아도 되는 이유보다 긴장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아졌다. 성과와 비교와 불안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을 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모두 내려놓고 싶지마 세상은 우리에게 완전한 이완은 또 다른 공허를 느끼게 만들어왔다.
긴장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적절한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시험을 앞둔 긴장, 중요한 말을 꺼내기 전의 긴장,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긴장, 그런 것들은 나를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준비시킨다.
문제는 긴장의 유무가 아니라 긴장의 밀도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긴장을 어떻게 덜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결국 긴장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 이후 나는 아주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 그리고 아내에게도 앞으로는 “긴장하지 마!”라는 말 대신 “긴장되는 게 당연해!” 라고
긴장을 없애려 애쓰지 않을 때 긴장은 스스로 낮아질 것이다. 인정받은 감정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나는 이제 긴장을 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긴장은 나를 다음 단계로 이끄는 신호다. 지금의 나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다.
회복 이후의 삶에서도 나는 여전히 긴장한다. 다시 아프지 않을까 하는 긴장.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 그러나 그 긴장 덕분에 나는 방향을 잃지 않는다.
긴장은 삶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힘이다.
그 힘이 있어 나는 주저앉지 않고 서 있다.
너무 세게 당기지 않도록 호흡을 고르고 너무 느슨해지지 않도록 오늘을 살아낸다. 그 균형 위에서 나는 다시 하루를 건넌다.
나는 ‘긴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긴장은 당기면 끊어지는 끈이 아니라, 적절한 탄력으로 유지해야 할 고무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