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의 공기는 유난히 거칠었다. 동대구역 광장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낙엽을 들어 올렸다 놓기를 반복했다.


방향을 잃은 낙엽들은 위아래로 흔들리며 황량한 도시를 촬영하는 작은 드론처럼 보였다. 어둡고 낯선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다가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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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진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새벽 기차였다.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내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불안과 긴장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손이 가는 대로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일곱 달 전 목에서 발견된 작은 혹은 편도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는 네 달이 지났다.


오늘은 내가 잘 회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첫 번째 시간이었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다시 과거와 마주하고 있었다.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는 동안 수많은 감정이 찾아왔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머문 감정이 있었다.


두려움보다 오래 남았고 불안보다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왔던 그 감정, 어떤 순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그 감정.


후회였다.

1. 이미 한 일이나 하지 않은 일을 돌아보며 뉘우치거나 안타까워하는 감정.


짧게 정의된 이 문장 속에 지금의 내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암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바로 이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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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더 살피지 않았을까?

왜 그때 쉬지 않았을까?

왜 몸을 그렇게 써왔을까?


하지 않은 일과 했던 일이 뒤섞여 계속해서 떠올랐다.


후회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는 말을 알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 몸 관리를 조금만 더 했더라면 지금 이 새벽에 긴장과 초조를 안고 플랫폼에 서 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아침부터 밀려왔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나는 이번에만 후회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나는 늘 후회를 하며 살아왔다. 같은 후회를 반복한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아니, 우리는 왜 같은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갈까? 그 이유가 개인의 나약함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불안 속에서 우리는 선택을 생각할 시간을 잃는다. 성과를 미루지 말라고 재촉하는 구조 안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일이 성실함으로 포장된다.


쉬는 일은 게으름이 되고 돌아보는 일은 비효율이 된다. 건강은 개인의 관리 실패로 치부되고 무리는 자기 책임으로 정리된다.


그렇게 우리는 멈추지 못한 선택을 반복하고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소모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뒤늦은 후회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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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회는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멈출 수 없게 만든 구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후회를 개인의 실패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끊임없이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요구하는 사회 안에서 후회는 거의 필연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나는 후회의 끝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후회의 방향도 달라졌다.


결과를 향한 후회가 아니라 태도를 향한 후회였다.


병이라는 결과보다 그 이전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팠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무시하며 살아왔는지를 묻고 있었다.


몸의 신호를 미뤄두고 감내를 미덕처럼 여기던 태도, 버티는 것이 성실함이라 믿었던 선택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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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회는 실패에 대한 자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라는

조용한 요청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후회를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나를 멈춰 세우고 방향을 조정하게 만드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후회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인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인식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후회조차 할 수 없었다.


후회는 이미 내가 한 걸음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는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할 감정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후회를 없애는 데 있지 않았다. 후회 이후에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같은 자리에서 자책으로 머무를 수도 있고 그 감정을 다음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후회는 자동으로 나를 바꾸지 않는다.


후회를 어떤 결과로 만들 것인지는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나는 후회를 과거를 벌하는 감정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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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다음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감각이다.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외면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이며 그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선택으로 이어갈지는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후회를 실천으로 옮기려 애쓴다. 완벽하게 바꾸지는 못해도 조금은 다르게 선택하려 한다.


후회가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후회를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생각한다. 한 번 흘러내린 시간이더라도 뒤집는 순간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방향은 바꿀 수 있다.


기차는 수서역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후회를 하고 있다. 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는 후회를 붙잡고 멈춰 서 있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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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의 모래시계에서 후회라는 모래가 모두 떨어지고 나면 나는 조용히 그것을 뒤집을 것이다. 흘러내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흐르게 할 수는 있다.


같은 모래라도 어떤 방향으로 흘리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후회를 지나온 나는 이전과 같은 속도로 살지 않으려 한다. 더 늦기 전에 멈추고 더 자주 살피며 더 신중하게 내 몸과 마음을 대하려 한다.


후회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 그것은 나를 묶는 감정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에 가깝다. 이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나는 하나의 결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후회를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후회를 뒤집어 삶으로 이어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나는 ‘후회’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후회는 모래시계에 남은 모래처럼 뒤집는 순간 또 다른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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