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베란다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책상 위 스탠드 불빛만이 조용히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 어제에 이어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을 펼치며 역사를 읽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장은 지금의 나를 비추고 있는 듯 다가왔다.
이 책은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대신 우리가 어떤 틀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해 왔는지를 집요하게 드러낸다. 프레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고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람들을 믿을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인종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그 연정선상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일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1장.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중에서 - 48page
그 과정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은 문장은 ‘증명’이라는 단어였다.
증명
1. 말이나 주장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를 통해 참임을 밝히는 일.
2.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행위.
사전적 정의만 놓고 보면 증명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증명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과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신들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임을 강조하며 우월함을 강요하던 시대에 증명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오래된 과거의 장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과학과 객관성이라는 언어로 포장된 증명의 방식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다만 표현만 달라졌을 뿐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증명해보라고,
사실이라면 근거를 내놓으라고,
마치 모두가 법조인이라도 된 듯
상대에게 입증 책임을 요구한다.
그 요구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스러운 태도가 되었는지 나는 문득 그 시작을 되묻게 되었다.
문제는 그 증명의 기준이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어떤 주장에는 통계와 자료를 요구하면서 어떤 감정에는 태도와 표정을 요구한다.
객관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분히 주관적인 잣대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증명은 쉽게 왜곡된다.
증명하지 못하면 잘못이 되고 설명하지 못하면 거짓이 된다.
또한 침묵하면 동의로 간주되며 이 단순한 논리는 수많은 상황에서 사람을 몰아세운다.
증명은 더 이상 사실을 가르는 도구가 아니라
책임을 전가하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적 병폐로 이어진다.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끝없이 설명해야 하고 약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증명의 의미는 퇴색되고 판단은 일부의 강한 확신에 의해 결정된다. 객관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깊은 회의를 느낀다. 어떤 사실을 증명해야 할 책임을 언제나 누군가에게 지운다는 태도. 그 책임이 과연 공정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우리는 묻지 않는다.
증명이라는 말 뒤에 숨은 권력의 방향을 외면한 채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모든 증명을 거부하는 것도 답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한 해답은 증명의 목적을 다시 설정하는 데 있다.
증명은 이기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이해를 넓히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증명을 요구하는 쪽 역시 자신의 기준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왜 그것이 증명이 되어야 하는지, 왜 그 방식만이 유일한 기준인지, 질문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
증명이 책임으로 둔갑하지 않기 위해서는 방향이 함께 점검되어야 한다.
암이라는 진단 이후 나는 수없이 많은 증명을 요구받았다. 검사 수치와 영상 결과와 의사의 소견. 내 몸은 언제나 증명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말보다 숫자가 앞서는 시간이 이어졌다.
회복 중이라는 말도 증명이 필요했다. 괜찮다는 감각은 참고사항에 불과했다.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 느낌들은 쉽게 무시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주 흔들렸고 나 스스로조차 나의 상태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장 먼저 증명해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오늘 하루를 견뎌냈다는 것, 불안 속에서도 일상을 선택했다는 것, 이 사실들은 누구의 확인 없이도 나에게는 분명한 진실이었다.
이 자기 증명은 어떤 검사로도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증명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통과된 증명이야 말로 나를 지탱하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타인에게 무조건적인 증명을 요구하는 태도를 경계하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도 있고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경험도 있다.
그 모든 것까지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심문대 위에 올려놓게 된다. 증명은 필요하다. 그러나 증명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증명이 책임으로 변질되는 순간
사회는 차가워진다.
그 차가움 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가장 약한 존재들이다. 나는 그 장면을 너무 자주 보아왔다.
나는 오늘 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섰다. 그 단어가 가진 힘과 위험을 동시에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증명을 요구하기 전에 이해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았다.
나는 ‘증명’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증명이란 의심의 도구가 아니라 책임을 성찰하게 하는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