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이었다. 인천 어머니 집의 공기는 익숙하지 않아서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낯선 잠자리에서 깨어난 몸은 조심스러웠고 창밖의 고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만들었다.
식구들이 잠든 집 안에서 혼자 책상 앞에 앉았다. 늘 앉던 자리도 아니고 손에 익은 풍경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 낯섦 속에서 나는 프레임에 갇힌 역사를 바로 보자는 책 한 권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하나의 단어가 먼저 나를 붙잡았다. 민주주의와 역사라는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그 힘의 이름을 오늘의 그런 생각으로 선택하게 된 순간이었다.
“단 한 번도 국민에게 권력이 주어진 적이 없다<중략>
오늘날 엘리트 정치 계급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늘 있던 바로 그 자리를 유지해왔다.
국민을 위하는 국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가 수많은 사람에게 행사하는 권력을 통해서 말이다.”
5장 민중에게 권력을 중에서 - 193page
권력.
1.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행동이나 의사를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힘.
2. 국가나 사회에서 공적인 일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힘.
권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에는 오늘의 새벽 공기가 유난히 무거웠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이 과연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묻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국민에게 권력이 주어진 제도라 배운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권력은 언제나 소수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권력자의 위치만 교체되었을 뿐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권력의 사전적 정의는 타인의 행동과 의사를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힘이다.
이 정의는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선택을 대신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폭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늘 공공의 이름을 빌린다. 질서를 위해서라 말하고 안전을 위해서라 주장하며 효율과 발전을 명분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권력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정당화해왔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계산이 숨어 있었다.
누구에게 유리한지 누구의 자리를 지켜주는지 누구의 불편은 감수해도 되는지에 대한 선택은 대개 힘을 가진 쪽의 언어로 결정되었다.
권력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퍼져나갔지만 권력은 나눠지지 않았다. 투표는 허락되었지만 결정의 핵심은 여전히 닿기 어려운 곳에 머물렀다.
우리는 참여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선택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력은 눈에 보이는 제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의 구조 속에도 있고 조직의 분위기 속에도 있으며 가정과 관계 안에도 스며들어 있다.
말의 크기와 침묵의 무게가 이미 힘의 분포를 말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가진 자의 욕심은 권력과 결합될 때 더 집요해진다.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권력을 움켜쥔다.
권력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데 능하다. 책임은 아래로 흘려보내고 성과는 위로 끌어올린다.
실패는 개인의 탓이 되지만
성공은 시스템의 공이 된다.
이 비대칭은 반복될수록 구조가 된다.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지점에는 대개 권력이 있다. 규칙은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말하지만 적용되는 방식은 결코 같지 않다.
권력은 법의 문장을 해석할 수 있는 위치를 점유한 자의 것이 된다.
나는 한동안 이런 구조를 멀리 있는 이야기로 여겼다. 정치의 문제 사회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병을 겪으며 문득 깨닫게 되었다.
권력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내 몸을 향해 권력을 행사해왔다. 쉬지 말라고 명령했고 아파도 버티라고 강요했다.
성과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통제했고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다.
그 욕심은 건강이라는 신호를 묵살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하면 된다는 말로 피로를 눌렀고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기준으로 몸의 속도를 무시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권력자였다.
병은 그 권력에 대한 경고처럼 찾아왔다.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려주었다.
치료의 과정은 내 안의 권력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회복의 시간 동안 나는 권력의 다른 얼굴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배가 아닌 돌봄으로서의 힘 통제가 아닌 조율로서의 힘이다.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나를 살리는 방향의 선택이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권력은 반드시 누군가를 억누르는 방식으로만 작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힘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힘 역시 권력의 다른 형태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문제를 겪는 이유는 권력이 집중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권력을 다루는 태도가 욕심에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책임을 요구하지만
욕심은 책임을 회피한다.
민주주의가 진짜로 작동하려면 제도보다 먼저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권력을 쥔 사람이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워야 하고 가진 사람이 멈출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구조는 반복된다.
나 역시 내 삶에서 작은 권력을 다시 정의하려 한다.
나를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힘으로 그리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아니라 오래 살아가기 위한 선택으로 말이다.
암이라는 병은 그 방향을 가르쳐주었다.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미루는지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외면하는지 그 모든 순간에 권력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오늘 권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민주주의와 사회를 다시 생각했고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권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권력이란 결국 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