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어둠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새벽이다. 창밖의 공기는 차갑고 집 안은 조용하다. 이 고요 속에서 나는 2025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한 해의 끝에 서면 언제나 그렇듯 몸보다 마음이 먼저 멈춰 선다. 오늘의 루틴은 늘 하던 대로지만 오늘의 감각은 분명히 다르다.


오늘 내가 붙잡은 단어는 회고다. 회고라는 말은 흔히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행위로 설명된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회고는 기억의 정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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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잊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정하는 일,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사전에서 말하는 회고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의 회고는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나를 마주하는 과정에 가깝다.


같은 장면도 지금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회고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고백이 된다.


2025년은 나에게 단순한 시간의 집합이 아니었다. 이 해는 생존이라는 단어로 시작해 회복이라는 단어로 흘러왔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감정의 단어들이 놓여 있었다.


지난 4월 14일 ‘AI’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오늘 ‘회고’라는 단어까지 160개의 단어에 대한 사유를 정리했고 그 단어들은 그때마다 나를 설명하는 일종의 언어였다.


회고를 한다는 것은 그 단어들을 다시 꺼내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그 단어들이 나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했는지를 되묻는 일이다. 어떤 날은 버텨야 했고 어떤 날은 멈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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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는 그때의 판단을 다시 채점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해하는 시간이다.


나는 올해 투병의 시간을 통과했다. 그 시간은 매일을 현재형으로만 살게 만들었다. 내일을 생각하면 불안해졌고 어제를 붙잡으면 마음이 무너졌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회고할 여유가 없었다. 오직 오늘을 견디는 것만이 유일한 전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지금의 회고는 더 무겁다. 지나온 날들에 의미를 덧붙이려는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애써 그 욕심을 경계한다. 회고는 미화가 아니며 고통을 서사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회고는 사실을 사실로 두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회고는 종종 성찰과 같은 말로 쓰인다. 그러나 성찰이 사유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라면 회고는 사유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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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가?

나는 그 결과를 감당하고 있는가?


올해 내가 적어온 그런 생각들은 매번 책속의 문장에서 찾은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그 단어들은 생각의 출입구역활을 해왔다.


그러나 단어나 문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단어를 붙잡고 있었던 나의 상태였다는 것을 나는 오늘 이 회고의 순간에 이르러 알게 된다.


어떤 날의 나는 단어에 기대어 버텼고 어떤 날의 나는 단어에 매달려 숨을 쉬었다.


회고는 그 차이를 구분하게 만든다. 단어가 나를 살린 날과 단어가 나를 가둔 날. 이 구분은 앞으로의 선택을 바꾸는 기준이 된다.


회고는 후회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후회가 선택의 결과를 되돌아보는 감정이라면 회고는 선택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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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고에는 비난이 없다. 대신 질문이 있다.

왜 그때 나는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은 나를 조금 너그러워지게 만든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예민해졌던 순간들과 설명하지 못해 침묵을 선택했던 시간들에 대한 회고는 변명이 아니라 맥락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올해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병원에서의 기다림,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회복을 기다리는 날들,

그때의 기다림은 견디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회고의 자리에서 그 기다림은 나를 훈련시킨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회고는 결국 시간의 재배치를 통해 고통의 시간은 줄어들고 의미의 시간이 늘어난다. 이것은 기억의 조작이 아니라 해석의 변화이며 같은 사실도 어떤 틀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한 회고를 원하지 않는다. 빠짐없이 기록된 연대기보다, 솔직한 몇 개의 장면이면 충분하다.


내 몸이 기억하는 순간들.

숨이 가빠졌던 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살아 있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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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의 나는 올해의 나보다 조금 더 느리게 선택하고 조금 더 묻고 조금 덜 단정하게 살고 싶다.


올해의 끝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회고를 자주 하되 오래 붙잡고 있지는 않으며 돌아보되 머물지 않겠다고 왜냐하면 회고는 쉼표이지 마침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25년의 마지막 날. 나는 오늘 회고라는 단어를 통해 한 해를 정리한다. 이 해는 견뎌낸 시간이고 통과한 과정이며 남아 있는 흔적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안고 다음으로 간다.


나는 ‘회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회고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정직하게 세우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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