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오늘이 대한임을 알려주듯 새벽의 차가운 냉기가 창밖의 거리를 누르고 있는 듯한 어두운 새벽이다.
짧은 명상을 마치고 몸속에 남아 있는 서늘함을 따뜻한 차한잔으로 데우며 서재로 들어섰다. 매일 같은 이 시간은 이제 생각이 먼저 몸을 깨운다.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거인의 노트를 펼쳤다. 무엇을 배워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히 보기 위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한 문장에서 멈추게 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진짜 욕망을 보라.
그러면 희미하던 내가 점차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이것은 생각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알면 자유로워진다.”
거인의 노트 중에서 - 75page
욕망.
1. 필요나 결핍에서 비롯되어 어떤 대상이나 상태를 강하게 바라는 마음.
2. 물질적 욕구뿐 아니라 명예, 인정, 사랑, 성취 등 정신적 바람.
욕망은 늘 통제해야 할 감정처럼 여겨졌고, 드러내면 부끄럽고 숨겨야 할 무엇처럼 배워왔다.
어릴 때부터 욕망은 절제의 대상이었다. 욕망이 많으면 흔들린다고 들었고 욕망을 앞세우면 이기적이 된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욕망을 줄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곧 인내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나는 욕망이 없어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욕망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방향을 잃었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
원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그게 내가 진짜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명확히 말하지 못했다.
욕망은 늘 큰 목소리로 말하지 않고,
아주 작고 흐릿하게 나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괜히 마음이 쓰이는 장면, 이유 없이 자꾸 생각나는 선택, 남의 이야기에 유난히 오래 머무는 감정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한다. 그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쌓아온 삶의 구조가 흔들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욕망을 없애거나 더 그럴듯한 목표로 덮어버린다. 욕망을 직접 마주하기보다 욕망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먼저 찾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원하는 삶을 묻기보다 지금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법을 먼저 고민했다.
욕망은 늘 나중 문제였다. 지금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말로 조금만 더 참자는 다짐으로 미뤄졌다.
그러나 투병의 시간을 지나오며 욕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묻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인가.
지금 이 하루를 반복해도 괜찮은가.
그 질문 앞에서 욕망은 더 이상 탐욕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준에 가까웠다.
그때 문득 욕망과 욕심을 구분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욕망을 말할 때마다 늘 욕심을 먼저 떠올렸 것이다.
그래서 욕망을 경계했고 욕망을 드러내는 일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욕심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남보다 더 가져야 하고 남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자란다.
그래서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채우면 곧바로 다음 결핍을 만들어 낸다.
반면 욕망은 비교보다 내면에서 시작된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나다워지는 지를 묻는 감각이다.
욕망은 나를 바쁘게 만들기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만든다.
욕심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조급해지지만
욕망이 분명해질수록 생각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그래서 욕망을 억누르는 삶은 사실 욕심을 줄이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진짜 욕망이란 남들보다 더 가지려는 마음이라기 보다는 내가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게 해주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욕망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남의 기준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욕망을 따라가며 살겠다고 결심한 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제 욕망을 외면하지 않겠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의 안정된 구조를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익숙한 삶을 다시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러나 그 불안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과 닿아 있다.
욕망을 억누르며 살 때보다 욕망을 바라보니 오히려 생각이 차분해졌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보다
무엇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그 변화는 삶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욕망을 정확히 볼수록 나는 조금씩 나 다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욕망은 부끄러워할 대상이 아니며 관리해야 할 위험 요소도 아니다.
욕망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며 그 질문에 귀 기울이는 순간부터 생각은 천천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욕망은 억제할수록 왜곡되고 바라볼수록 나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