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마지막 날,
나와 딸의 계략은 실패했다.

by 마부자

한밤중처럼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 나는 평소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베란다 앞에 섰다. 아파트 너머로 서서히 붉은 빛이 번지며 주변을 밝히는 2025년의 마지막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장면은 특별한 연출 없이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고, 나는 그 빛을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큰 일정이 없는 날이면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 해를 맞이해 왔다.


짧은 명상으로 호흡을 고르고, 책상 앞에 앉아 하루의 방향을 정하는 이 반복은 어느새 생활이 되었고,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흔들림을 줄여왔다. 오늘 역시 같은 동선으로 움직였지만, 마음의 무게는 예전과 달랐다.


오늘은 책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지난 365일을 천천히 돌아보며 ‘회고’라는 단어에 대해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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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는 감정의 정리가 아니라

인식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겪었는지보다, 그 시간을 통과한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 충분히 적어 두었기에, 2025년의 마지막 일기에는 지나간 사건들을 다시 꺼내지 않기로 했다. 기억을 반복하는 것은 때로 성찰이 아니라 집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올해를 통과하며 배웠다.


그래서 오늘은 정리보다 결론에 가까운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짐을 했다. 2026년에는 더 이상 일기 속에서 지난 투병의 과정을 반복해서 언급하지 않겠다고. 그것은 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이상 중심에 두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삶의 주어를 다시 현재의 나에게 돌려주기 위한 결정이다.


올여름 느닷없이 찾아왔던 불청객은 올겨울의 끝자락에서 고통스러운 기억과 목에 남은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흔적들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것이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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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것들은 두려움의 증거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표식에 가깝다.


일상 속에서 그 흔적과 일부러 마주할 이유도 없어졌다. 아픔은 지나간 사건이 되었고, 회복은 특별한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회복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그 사실 자체가 회복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년에도 세 달에 한 번은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일정은 투병의 연장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같은 장소라도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했다.


2025년의 마지막 태양은 아무 설명도 없이 떠올랐고, 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특별히 감사하거나 다짐하지 않아도, 그 빛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 순간의 나를 설명하자면, 버텨낸 사람이 아니라 지나온 사람이었다.


이 해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느낌보다,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그 감각을 붙잡은 채, 다음 해를 준비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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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25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모처럼 다섯 식구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둘째가 백령도에서 포항으로 나온 뒤 가끔 모여 식사를 하긴 했지만, 오늘의 저녁은 평소와는 결이 달랐다.


한 해의 끝이라는 시간 위에,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의미가 겹쳐진 하루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날이었지만, 우리에게 오늘은 단순한 연말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한 해를 정리하는 날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오늘을 가족의 시간이 다시 한 번 같은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종무식을 마친 딸이 가장 먼저 집에 도착했고, 말일임에도 알바를 나간 막내는 이른 저녁 귀가를 했다. 그리고 둘째는 포항에서 얼마 전 구입한 새 차를 타고 도착했다.


그렇게 한 사람씩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하루의 일정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집 인근의 생고기 집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 날고기가 금지되었던 나 덕분에,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뭉티기를 먹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주치의의 허락이 내려졌고, 미루어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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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하나에도 시간의 경과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오늘 다시 실감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식당은 동네의 작은 곳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자주 앉던 익숙한 자리였다. 식탁 앞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그 풍경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모습이었다.


크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한 장면이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소주 한 병을 주문했고, 소주잔 네 개를 받아 직접 한 잔씩 따랐다.


아내와 첫째, 둘째에게 잔을 건네고 마지막으로 막내의 잔을 채웠다. 이 장면이 주는 의미는 술자리가 아니라, 시간의 통과를 함께 확인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아직 성인이 되기까지 네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이 한 잔은 술의 의미를 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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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생인 막내는 오늘 자정을 넘기면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한 발 나와, 사회라는 더 넓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성인이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지만, 가장 단순하게는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미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술을 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늘 몰래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던 경험이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막내는 술을 마시고 현관을 들어와도 내가 할 말이 없어지는 나이가 된다.


그리고 술에 취한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하는 막내에게 해장국을 끓여줘야 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 된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부모의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전에 막내의 주량을 확인하기로 했다. 첫째와 둘째가 오늘 정오까지 막내를 붙잡아 두기로 했고, 나와 아내도 그 시간까지 함께 버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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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술자리는 시험이라기보다,

새로운 관계로 넘어가기 위한 작은 통과의례에 가까웠다.


나는 오늘 이 저녁을 통해 한 해의 끝보다 시간의 이어짐을 더 강하게 느꼈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조금씩 물러나며, 가족은 그렇게 형태를 바꾼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다섯 식구가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기록할 만한 하루였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연신 술잔을 부딪치며 분위기를 이끌었겠지만, 오늘은 그 역할을 첫째에게 넘겼다.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막내였고, 나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권한을 위임한다는 건, 내가 한 발 물러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정이 되면 본격적으로 술을 시작해 주량을 테스트하고, 다음 날 숙취라는 큰 선물을 안겨 다시는 술 생각이 나지 않게 하자는 것이 아빠와 누나의 은밀한 계략이었다.


계획만 놓고 보면 꽤 그럴듯했지만, 우리는 중요한 변수를 하나 간과하고 있었다.


아빠의 몸속에 있는 술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면, 첫째가 충분히 막내를 리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둘째 아들이 술을 잘 못 마시니 막내도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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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기대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막내는 둘째와 달랐다. 오히려 나의 술 유전자를 과하게 물려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웃음과 함께 묘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 상황을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뭉티기 집에서 식사와 간단한 술자리를 마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을 나선 시간이 오후 열한 시 사십 분. 자정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하나의 문턱처럼 다가와 있었고, 우리는 그 문을 함께 넘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인근 호프집의 문을 자정 정각에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막내의 주량에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막내의 주량보다 바닥난 우리의 체력이 더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는 걸 다시 느꼈다.


막내는 신이 나서 맥주잔을 연이어 비웠고, 딸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스물여덟의 딸이 이제 막 열아홉이 된 막내를 혼자 감당하기에는 체력도 주력도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결국 아내가 먼저 졸리다며 집에 가자고 했고, 얼큰해진 딸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군이 되지 못한 나와 둘째 역시 더 버틸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술집을 나서며 막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들이 근처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합류해도 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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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으로 걱정하던 장면이,

이렇게 현실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딱히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막내는 우리 네 명을 뒤로한 채, 놀라울 만큼 멀쩡한 걸음으로 다른 곳을 향했다. 남은 우리는 마치 패전한 군대처럼 말수가 줄어든 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부모라는 역할이 서서히 자리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막내는 앞으로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나는 그 선택을 지켜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술자리는 그 변화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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