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추워진 초겨울의 공기가 새벽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이른 어두운 새벽임에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커튼을 걷었다.
아파트 빌딩 숲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은 어느 때보다 낮고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2025년의 마지막 햇살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 빛마저도 함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하루를 시작하는 태양이 아니라, 한 해를 정리하러 떠오르는 태양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유성호박사의 책 <유언노트>를 읽고 난 뒤, 하루 종일 그 문장들이 몸 안에 머물렀다.
죽음을 다룬 책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가라앉기보다 차분해졌다. 책을 덮고 나서야 알았다. 이 책이 말하고 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지금,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2025년을 사흘 남겨둔 시점에서, 나는 올해를 어떤 책으로 마무리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수많은 사건과 변화가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관통하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생존이었다.
살아남는다는 감각,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일,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까지.
올 해는 나에게 그 자체로 생존의 기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과 가장 정반대에 놓인 단어인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책, <유언노트>를 꺼내 들게 된 이유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단절된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피하려는 태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 또한 삶을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도착할 종착지이기에, 그 지점을 마주하는 방식은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유언노트>는 바로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 보고 싶었던, 이 해의 마지막 책으로 가장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기며 나는 죽음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는 삶의 태도를 하나씩 점검받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워졌다.
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간을 통과한 뒤,
나는 매일 ‘잘 산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예전에는 잘 산다는 것이 버텨내는 것이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 그 기준은 많이 바뀌어 있다.
잘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에 가까워졌다. <유언노트> 속에서 저자가 보여준 죽음의 얼굴은 조용했다.
과장도 없고, 위로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나를 오래 붙잡았다.
죽음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늘 삶의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삶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치료를 받던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혹시’라는 말을 떠올렸다.
혹시 다시 재발하면 어쩌지?
혹시 전이가 되면 어쩌지?
그 모든 혹시는 결국 죽음을 멀리 밀어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포기나 체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서 사람들이 마지막에 붙잡는 것이 성취가 아니라 관계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를 기다리던 아내의 표정, 아무 말 없이도 내 상태를 먼저 살피던 아이들의 눈빛, 그 시간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상실 이후에도 살아가도 되는지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아직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을 대신 건드려 주었다.
아프고 난 뒤 웃고 있는 나를 보며, 혹시 너무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했던 그 마음조차 함부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선이 고마웠다.
오늘의 나는 아직 완전히 건강해진 사람도,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아니다.
다만 이전보다 조금 더 또렷하게 하루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미루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 대충 넘기지 말아야 할 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만약 오늘이 유언을 남길 수 있는 하루라면, 나는 거창한 말을 남기기보다는 오늘을 성실하게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아프지만 숨 쉬고, 두렵지만 사랑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도망치지 않았던 하루였다고.
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포함한 채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그 연습 중에 있다.
그리고 아마, 이 연습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비록 12월 30일의 일기지만 2025년의 마지막 날에 업로드 되는 일기의 내용이 죽음과 유언이라는 키워드를 품은 책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사실이 의외로 어둡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반대였다.
삶을 끝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다시 정렬하는 이야기로 이 해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이 조용히 마음을 붙잡았다.
대어쩌면 이 한 해를 ‘생존’이라는 단어로 통과해 온 나에게,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책으로 마지막 기록을 남기는 일은 비극이 아니라 용기일지도 모른다.
끝을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오늘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그 태도로 2025년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