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아직 해가 오르기 전이다. 오늘의 새벽은 유난히 고요하다. 바람도 소리를 낮추고 있고 창밖의 불빛들도 하나둘씩 힘을 빼고 있다.


짧은 명상을 마치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의 애매한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았다. 몸은 의자에 기대어 있지만 생각은 아직 어제와 오늘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은 문장이 아니라 나 자신의 태도에 먼저 눈이 간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익숙한데 생각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여기는 마음 그 익숙함이 과연 성장과 이어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현실과 환상은 동전의 양면인지도 모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기에 환상에 환호하지만, 그런 현실이 없다면 환상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거꾸로 환상에 젖어 즐거워하고 기뻐하다 보니 현실을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현실이 답답한 지하방이라면, 환상은 거기에 달아놓은 환풍구가 되는 셈이지요.”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중에서 - 114page


환상.

1.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있는 것처럼 느끼거나 떠올리는 생각이나 모습.

2. 현실을 벗어나 이상적으로 꾸며 낸 생각이나 기대.

3. 감각의 착오로 실제와 다르게 인식되는 현상.


환상이라는 단어는 정의만 놓고 보면 분명 현실과 거리를 둔 단어다. 손에 잡히지 않고 검증되지 않으며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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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단어는 쓰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다.


기대를 넘어서는 경험 또는 마음을 들어 올리는 감각인 ‘환상적이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완전한 긍정을 떠올린다.


반면 도망, 착각, 자기기만 같은 의미인 ‘환상에 빠졌다’고 말할 때 우리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떠올린다.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쓰인다는 사실이 오늘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동안 환상을 경계해야 할 것으로만 여겨왔다.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상에 기대면 안 된다고 믿었다.


환상은 나를 약하게 만들고 판단을 흐리게 하며 결국 실망으로 데려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현실을 보며 기대하지 말라고 다그쳐왔다.


하지만 오늘 문장을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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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너무 답답할 때 환상은 숨을 쉬게 해주는 통로였고, 당장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환상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투병의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환상을 떠올렸다. 치료가 끝난 이후의 일상이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웃고 있는 나의 모습들.


그 장면들은 현실이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오늘을 견딜 수 있었다. 환상이 없었다면 현실은 너무 날것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환상이 위험해지는 순간도 경험했다. 환상이 현실을 대신하려 들 때였다.


지금의 상태를 보지 않으려 하고 불편한 감정을 건너뛰려 할 때 환상은 나를 현실로부터 떼어냈다.


그때의 환상은 환풍구가 아니라 도피처였다. 숨을 쉬게 해주는 통로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환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보다는 사용의 방향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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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은 현실을 부정할 때 문제가 된다.


그러나 현실을 견디기 위한 장치로 머물 때는 오히려 삶을 지탱한다.


환상이 현실을 대신하지 않고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다리가 될 때, 그때 환상은 긍정의 얼굴을 가진다.


이제 환상에 머물되 거기서 살지는 않고 환상을 통해 숨을 고른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안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글 속에서 나는 종종 더 나은 나를 상상한다.


더 단단한 사람, 더 깊이 이해하는 존재, 그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서만 그 환상은 의미를 가진다.


환상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을 버틸 수 있게 한다. 그 차이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환상을 무조건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 환상이 나를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인지 나 스스로에게 먼저 묻기로 했다.


위로의 관점에서 환상은 나에게 이런 말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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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현실이 전부는 아니며

지금의 상태가 영원하지 않다고.


환상은 나를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오늘 새벽 책상 앞에서 나는 환상을 다시 정의하게 된다. 환상은 현실을 부정하는 거짓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상상이다.


다만 그 자리를 알고 돌아올 수 있을 때에만 환상은 의미를 가진다.


나는 ‘환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환상은 현실을 대신하면 도피가 되고, 현실로 돌아오면 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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