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책을 펼치다 보면,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 문장이 쉽게 떠나지 않는 날이 있다.
그 문장은 위로가 되기보다 불편함으로 남고 오래도록 생각을 붙잡는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어제의 오후의 잔상 때문인지 몰라도 읽은 뒤에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또렷해진 질문 하나가 남았다.
“책 읽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첫걸음은 성찰과 각성에 있습니다.
뜻밖에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여깁니다. 우쭐대고 자랑하고 거만합니다.
알고 보면 별 볼일 없고 비어 있고 상처투성이이면서 말입니다. 다 제 잘난 체만 하며 살아가지요.”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중에서 - 94page
각성.
1. 잠자고 있던 상태에서 의식이 또렷해지는 것.
2. 무심히 지나쳤던 문제나 상황을 자각하고 인식하게 되는 상태.
3.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분명해지는 상태.
각성은 자칫 단순히 정의만 놓고 보면 깨달음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그동안 꽤 많은 시간을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남들만큼은 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이 정도면 이해하고 있다는 자기평가.
그런 생각들은 나를 지탱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멈추게 했다.
이미 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고
이미 괜찮다고 여기는 순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문장이 나를 칭찬해주기보다는 나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낼 때 또는 내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들춰낼 때 나는 불편해진다.
독서를 통해 문장 속에서 찾아오는 각성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러나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나의 착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몸이 아프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를 꽤 단단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감정도 잘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자 그 믿음은 쉽게 무너졌다. 두려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불안 앞에서 판단은 흐려졌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강하다고 믿었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상황이 허락해준 착각이었다는 것을.
각성을 한다는 것은 사실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내가 생각했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 놓인
간극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고 비어 있고 상처투성이인 나를 마주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그 순간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변화도 없다.
각성 없는 성찰은 자기위로로 끝나고 각성 없는 독서는 지식의 소비로 남는다.
각성은 거창한 결심과는 다르다. 각성을 실천하려면 오히려 말수가 줄이고 판단이 조금은 늦어져야 한다.
책 속에 담긴 글을 통해 각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 말이 옳다는 판단보다 그 말이 나에게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잘 쓴 문장보다 솔직한 문장을 남기려 애써야 한다. 물론 나도 이제부터 그렇게 각성을 실천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각성은 잔인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정직한 위로이기도 하다.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과 아직 많이 비어 있다는 인정이 오히려 나를 조금 가볍게 만든다.
잘난 체를 내려놓는 순간 나는 비로소 다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책은 나를 깨어 있게 만든다.
나의 허영을 흔들고 나의 착각을 깨운다.
그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나는 ‘각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각성이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잠시 깨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