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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월 11일 토요일의 생각

현명한 회피일까, 아니면 회피라는 이름의 또다른 타협일까?

by 마부자


금주 11일째,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벌써 두 번째 불금의 유혹을 넘겼다. 금요일 저녁의 고요한 결심이 주말 아침으로 이어질 때, 마음속에 작은 성취감이 자리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공기가 창밖에서부터 스며들었다. 어제까지 매섭게 몰아치던 바람은 사라졌고, 묵직한 습기를 가득 머금었던 공기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날씨가 뭔가 스스로 정돈한 듯 차분해 보였다.


아침의 한적함 속에서 문득 베란다에 나가 명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더 맑게 만들어줄 것 같은 그 행위를 상상하며, 창문을 열어봤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 아직은 이른 시도라는 것을 알았다. 온기가 더 필요했다. 나는 창문을 닫으며, 이 아침에 적합한 방식으로 나를 돌볼 방법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새로운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날씨와 마음은 비슷하다. 변화는 조금씩,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찾아온다. 거실에 앉아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정리했다. 평소처럼 목표를 읽고, 간단히 몇 줄 적어보며, 누군가에게 공감의 한마디를 댓글로 남겼다. 이러한 작은 습관들은 나에게 하루를 준비하는 의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 뒤, 자연스럽게 새로운 책을 펼쳤다.

얼마 전 장만한 연탄 중에서 눈길을 끈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였다. 책꽂이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렸다. 표지의 단순함 속에서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손끝으로 책의 질감을 느끼며 문득 깨 달았다. 내가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는 사실 말이다.


헤밍웨이를 포함해 조지 오웰, 괴테,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모두 이름만으로도 문학의 거장으로 떠오르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내게 멀게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깊고 묵직한 문장이 어려울 것 같아서 였을까, 아니면 그들의 작품 속에서 느껴질 인간의 본질과 고뇌를 맞닥뜨릴 자신이 없었던 걸까.


책을 손에 든 채, 나는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이런 거장들의 작품 앞에서는 멈칫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이내 또 다른 설렘으로 변했다. 어쩌면 오늘이 그 여정을 시작하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노인과 바다', 그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새로운 문학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나는 망설임 없이 "노인과 바다"의 첫 장을 펼쳤다. 흰 페이지 위에 새겨진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 켠에서 작은 떨림이 일었다. 문득 분량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의외라는 느낌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이 정도라면 완독할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도 뒤따랐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진짜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나는 단순히 글의 내용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 뒤에 숨겨진 내면과 함의를 읽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침묵 속에서, 단어가 빚어내는 여백 속에서 작가의 의도와 인물의 감정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는 이전의 내 독서 방식과는 확실히 다른 접근이었다.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독자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삶의 실마리로 받아들이는 독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깨달음은 단순한 독서 시간이 아닌, 성장의 성취감으로 나를 채웠다. 독서를 습관으로 만들어가며 처음으로 경험한 깊은 만족감이었다. 헤밍웨이의 단단한 문장들은 마치 거울처럼 내 안의 성장을 비추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단지 소설 한 권을 완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의 한적함은 때때로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출근하지 않는 아내가 늦잠을 자는 덕분에, 나는 방해받지 않는 고요 속에서 책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읽은 덕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록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책 속의 단어 하나하나를 마음으로 음미하며 읽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단순한 독서의 마침표가 아닌, 하나의 여정을 마친 뒤의 쉼이었다.

책을 읽으며 노인의 사투를 따라가는 동안, 나는 그가 바다와 싸우는 모습을 넘어서 그의 내면, 즉 인간으로서의 외로움과 의지, 삶을 향한 고독한 승부욕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장들은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나를 울리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이 있다. 책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그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을지 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이 문장은 노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바람과 파도, 그리고 끊임없이 맞서야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이 문장을 곱씹었다. 그리고 깨 달았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이나 이야기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경험이라는 것을. 오늘, 이 짧은 책 한 권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만 같았다.



토요일인 오늘, 또 하나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오늘만 잘 견디면 최소 다음 주 금요일까지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니, 금주를 더 길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선언했다. 오늘 금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성공이 마냥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유혹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유혹이 다가올 틈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일상 속에서 술을 떠올리게 하거나 그리워할 만한 상황 자체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나만의 규칙과 리듬에 충실한 덕분에 유혹은 생각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천의 친구들 과의 모임은 내게 오랜 세월의 깊은 정이 깃든 특별한 자리다. 20년 넘게 이어온 인연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어제 저녁, 새해를 맞아 부부동반으로 첫 모임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더불어 KTX 왕복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매력적인 제안도 함께였다.


순간,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공짜로 인천에 가서 친구들과 술도 한잔하고, 어머니 얼굴도 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석이조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참석하지 않겠다고 정중히 의사를 전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일정 조정 이상의 결심이었다.


사실 가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친구들 과의 재회도, 어머니와의 만남도 가능하다. 내 결심만 굳게 지킬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아직은, 눈앞에서 오가는 술잔의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지난 연말에도 다른 사정으로 인해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술자리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내가 이제는 술을 끊었다고 선언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부끄럽고 두려웠다.


아마 그 자리에서는 여전히 나를 향한 술잔이 건네질 것이고, 그 술잔을 앞에 두고 담담히 물이나 음료를 마시는 내 모습이 낯설고 어색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불편한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지금의 나는 내 의지를 온전히 지켜낼 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직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친구들과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의지가 더 강해지고 나를 지키는 힘이 확실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스스로를 조금 더 보호해야 한다.


이 선택을 하며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작은 결단들이 결국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임을 믿기로 했다. 의지는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루틴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잠시 미뤄두는 시간이다.

이는 결코 나쁜 방식은 아닐 것이다. 유혹과 직접 맞서는 대신 그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방법에는 어딘가 미묘한 허전함도 있었다.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싸울 기회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이 현명한 회피일까, 아니면 회피라는 또 다른 이름의 타협일까?


오늘 밤이 깊어지면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 같다. 이 과정이 단순히 술을 멀리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혹은 나는 유혹이라는 감정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 속에서도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오늘 하루도 금주를 성공적으로 보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작은 성공들을 쌓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어제 잠을 설친 탓인지 아내는 한참을 자고 나서야 느긋하게 일어났다. 시계는 이미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아내의 첫 마디는 늘 그렇듯 “배고파”였다. 그 익숙한 목소리는 마치 나를 향한 작은 호출 같았다. 나는 웃음이 배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이미 완벽한 루틴을 마친 상태였다. 방해받지 않고 명상을 하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낸 아침이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행복감과 충만함이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상태로, 아내와 함께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해 식사를 마쳤다. 오랜만에 이렇게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소소하지만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왔다.


식사 후에는 자연스럽게 외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오늘은 토요일, 그 말의 의미는 내게 너무도 분명하다. 내 일기를 자주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은 볼링장에 가는 날이다.


볼링장으로 가기 전에 먼저 딸의 집에 들를 일이 생겼다. 얼마 전 딸이 이사를 하면서 중고로 들인 세탁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세탁기의 호스가 짧아 사용이 불편했는데, 오늘 새로운 호스를 준비해 교체해주기로 약속했었다. 이런 작은 도움이라도 딸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출발 준비를 하려는데 막내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나도 볼링 치러 갈래!" 순간 웃음이 나왔다. 막내의 말 한마디에 평소보다 더 활기찬 기분이 들었다. 함께 가자는 동행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하루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다.


딸의 집에 도착해 세탁기를 들여다보며 손을 봤다. 익숙한 도구와 움직임 속에서 나는 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딸의 집은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정리가 덜 된 느낌이었지만, 그런 어수선함 속에서도 따스함이 묻어났다. 세탁기의 호스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새 호스를 연결하고 물이 제대로 흐르는지 확인한 뒤, "이제 편하게 쓸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집을 나서려던 순간, 딸이 뭔가를 가져왔다. “세탁기 고쳐준 수고비 대신이에요.” 손에 쥐어진 것은 돈이 아닌 한 권의 책이었다. 표지를 보자마자 미소가 번졌다. 딸이 건넨 책은 최진영 작가의 장편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였다.

손끝으로 표지를 쓰다듬으며 딸을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웬 책이야?”

그러자 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 전에 아빠가 최진영 작가의 에세이 ‘어떤 비밀’에 대해 후기 쓴 걸 봤어요.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그 말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쓴 짧은 후기 하나를 기억하고, 그것을 생각해 선물로 이어가는 딸의 섬세한 마음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사실, 내가 쓴 글은 별것 아니었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단순히 기록한 것뿐이었는데, 딸은 그 속에서 나의 마음을 읽어내고 나와 연결될 무언가를 준비한 것이다.


책을 손에 든 순간, 단순한 책 한 권 이상의 의미가 느껴졌다. 그것은 딸이 보여준 사랑의 표현이자, 내 취향을 존중하고 공감하려는 그녀의 노력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교감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리고 딸이 그것을 먼저 보여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세탁기 호스를 교체해준 것은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딸은 그 일을 기념이라도 하듯, 내게 책이라는 선물을 건넸다. 나는 순간 말없이 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가 주고받는 것은 물건이나 행위 이상의 무엇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었고, 그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작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온전히 음미하겠다고. “해가 지는 곳으로”라는 제목처럼, 이 책도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가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책을 소중히 가방 안에 넣었다.


이렇게 단순한 교환이 이루어진 순간이 참 묘하게 느껴졌다. 손재주와 책 한 권. 세탁기를 고쳐주며 내가 딸에게 준 것은 작은 편리함이었지만, 딸이 내게 준 책은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딸과 나 사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체이자,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초대였다.


책을 품에 안고 집을 나서며, 문득 오늘 하루가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막내와 함께 볼링장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딸의 마음이 묻어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또 하나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요즘 들어 문득 생각이 났다.


최근 내게 책을 가장 많이 선물해주는 사람이 바로 딸이라는 사실을. 시크한 말투와 무심한 표정 뒤에 숨겨진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늘 나를 응원하고 있다. 딸은 나의 곁에서 내가 걸어가는 길을 조용히 지켜봐 준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다가도, 가끔씩 툭툭 던지는 조언은 의외로 깊은 울림을 준다.


블로그를 꾸리는 데 있어서도 딸의 역할은 적지 않다.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 적절한 폰트 선택, 깔끔한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 내가 오늘의 블로그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건 그 작은 조언 하나하나가 모였기 때문이다.


딸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더 즐길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돕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대견함과 고마움이 마음속에서 동시에 밀려들었다.


무심한 척, 관심 없는 척하지만 사실은 늘 깊이 생각하고 있는 딸. 그녀의 조언과 격려는 나를 움직이는 큰 힘이 된다. 오늘도 최진영 작가의 책을 건네주며 보여준 그녀의 배려는 단순한 선물 이상의 의미였다. 딸의 그 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단순히 누가 더 많이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딸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살며시 그녀를 안아주었다. 어색한 듯 딸은 머뭇거렸지만, 나는 마음을 전하는 데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작은 행동들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리고 내가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감사히 여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딸과의 관계는 그렇게, 서로의 삶 속에서 작은 흔적들을 남기며 이어지고 있다. 내가 주는 것보다 많이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저 따스함 속에 머물기로 했다. 그녀의 조언과 선물은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


늘 그렇듯 오늘도 약속된 두 시에 볼링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동호회 회원들 중에는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 지도 꽤 되었으니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씁쓸함이 남는다. 혼자서 시간을 맞춰 도착했을 때의 그 고요함은 뭔가 허전함을 남긴다.


그래도 아내와 막내가 함께였기에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활기차게 볼링을 즐기며 웃음을 나눴다. 내가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가족과의 이 순간 또한 소중했다. 결국 그렇게 밝은 분위기 속에서 몇 게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이른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르고, 간식을 먹기에는 또 조금 늦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내와 함께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막내가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고, 주말 오후의 느슨한 공기를 달래줄 따뜻한 음식이 필요했다. 부엌에서 밀떡을 불리고, 양념장을 만들며 어울리는 간단한 대화들이 오갔다. 매운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동안, 그 시간은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떡볶이는 단순한 간식 이상이었다. 고소한 어묵, 매콤달콤한 양념, 쫄깃한 떡. 그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가족의 입맛을 채우듯, 이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식탁 위에 모여 앉아 떡볶이를 나누며, 막내가 오늘 볼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작은 일에도 크게 웃어주는 가족의 존재는 그렇게 하루를 더 따스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록 동호회 회원들의 부재로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떡볶이와 가족의 웃음 덕분에 오늘 하루가 의미 있게 채워졌다. 어쩌면 완벽한 날이란 이런 소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배부른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개인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며 “노인과 바다”의 서평을 작성하기로 했다. 다시 책을 펼쳐, 내가 밑줄을 그어둔 문장들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그 문장들 속에 담긴 깊은 울림을 다시 느끼며, 그 감정을 온전히 글로 풀어내려 노력했다. 책 속 노인의 고독과 싸움, 그리고 패배를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써 내려가며 나 자신과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평을 마치고, 이어 일기를 정리했다. 하루의 끝을 글로 마무리하는 이 시간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더 오래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의 일기를 마쳤을 때, 시계는 어느덧 저녁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컴퓨터를 끄고 잠시 의자에 기댄 채 생각했다.


오늘 내가 인천에 가지 않기로 한 선택이 가져다준 의미들.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분명 소중한 시간이겠지만, 올해 이루고자 하는 내 목표를 위해 잠시 뒤로 미뤄둬야 할 의미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준 대가는 값 졌다.


금주의 결심을 지킨 오늘, 나는 나만의 의미 있는 시간들로 하루를 꽉 채울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내 삶의 중심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이 성취는 단순히 유혹을 이겨낸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조금 더 다가선 결과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이 만족감은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나는 오늘의 선택을 지켜낸 내 의지에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하루하루 이런 순간들을 쌓아가며, 내가 원하는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그렇게 내게 의미를 만들어준 오늘에 감사하며,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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