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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월12일 일요일의 유혹

주말 치맥으로 인해 마음 속에서 발발한 천사와 악마의 싸움의 승자는...

by 마부자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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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12일째. 어제도 평소처럼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약 1시간 늦게 눈을 떴다. 물론 일요일 아침은 알람을 맞추지 않기로 한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5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곤 했는데, 오늘은 눈을 떠보니 어느새 6시가 다 되어 있었다. 


마치 내 몸이 일요일이라는 휴일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내 몸속에는 "일요일은 느긋해도 괜찮다"는 오래된 습관이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침대에서 한참을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오늘의 루틴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몸을 깨우고, 명상으로 아침을 열었다. 이어서 목표를 읽고, 그것을 다시 쓰며 내 안에 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에 공감 댓글을 남기는 작은 실천도 이어갔다.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새로운 책,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펼쳤다. 그 제목만으로도 묘한 무게감을 주었다. 단지 책을 꺼내들었을 뿐인데도 마음 한편이 차분히 가라앉는 듯했다. 임경선 작가는 내가 얼마 전 “태도에 관하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그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들이 곧바로 기억 속에 떠오른다. 과장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을 담아낸 글. 마치 잘 다듬어진 나무토막처럼 차갑지만 고요하게 마음에 닿았다.


그녀의 글은 직설적이면서도 묘한 매력을 가진다. 작가 스스로 ‘건조함이 느껴지는 문장’이라 표현했듯이, 화려한 꾸밈 없이 정직하게 쓰여진 글들이었다. 그런데 그 건조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이 모순이, 내가 그녀의 글을 사랑하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언젠가 정말로 작가가 되어 내 이름을 단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다면, 그 문장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처럼 소란스러운 생각들을 주섬주섬 꺼내놓기만 할까, 아니면 임경선 작가처럼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고 정제된 언어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을까. 그녀는 내가 작가라는 꿈을 품으며 처음으로 닮고 싶다고 느낀 사람이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녀의 글이 내 안에 작은 흔적을 남길 것만 같다. 그 흔적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게 해줄 거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그러나 문득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겨우 백 권 정도의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임경선 작가의 책 한 권만으로 그녀를 ‘멘토’라거나 ‘스승’이라고 칭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글에 매료된 감정이 진짜라고 해도, 아직 나의 독서 경험은 바다의 물방울만큼이나 작지 않은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나는 에세이를 먼저 선택했다. 소설보다 더 진솔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작가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그리고 외국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작가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들 중 단 1%도 알지 못한 채 벌써 멘토를 만났다고 느낀다니, 과연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일까, 아니면 내 안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자기위안일까? 이 질문은 나를 멈춰 세웠다. 멘토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감당하기에는, 내 확신이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졌다.


임경선 작가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를 스스로의 기준으로 다시 한 번 검증해보기로 했다. 단 한 권의 책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녀의 다른 작품과 문장들 속에서 진정성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나 혼자만의 과도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의 멘토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른 뒤 내가 그녀의 글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린 일이 아닐까.


이 모든 생각들이 내 안에서 이어지고 엉키며, 나는 다만 웃어버렸다. ‘이런 고민도 결국 내 혼자만의 착각이겠지.’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조차도 그녀의 글에서 배운 것일지 모른다. 건조한 문장의 깊이를 헤아리며, 나는 조금 더 신중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용기를 내어 나만의 조용한 검증을 시작했다. 일방적인 감상에서 한 발짝 물러서, 그녀의 문장과 태도, 그리고 그녀가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마음속에서 그녀에게 “합격”이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어디론가 전달될 편지가 아니라,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작은 선언이었다. 그녀는 이제 나의 글쓰기 멘토로서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적 동의가 아니라, 내 안에서 우러난 확신과 신념이었다.


그녀가 독자들과 논객들에게 질문을 받고, 그것에 답하는 과정들을 담아낸 책의 내용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단지 글로 전달되는 교훈을 넘어, 그녀가 자신을 향한 질문에 얼마나 진지하고 정직하게 응답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 태도는 단순한 문장력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답변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공감을 했다. 나 또한 그녀와 비슷한 질문 앞에서 흔들렸고, 방황했으며, 어쩌면 답을 찾으려는 용기조차 부족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단순히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이상의 무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아닐까? 임경선 작가는 그 점에서 나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녀의 글을 두고 “냉정하다”는 평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작가로서 그녀의 문장은 지나치게 건조하고, 독자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대신 담담하게 사실만을 전하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점에서 독자에게는 다소 차갑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읽는 내내 어떤 위로도 기대할 수 없는, 마치 온기를 거둬낸 듯한 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그녀의 필체가 좋았다.


그녀의 문장은 감정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친 감정을 걷어내고,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글은 평론가적이다. 차가운 이성과 논리, 그리고 사려 깊은 태도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차가움 속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친숙함을 느낀다. 마치 오래된 벗과 나누는 대화처럼, 그녀의 문장은 나를 과도하게 다독이지 않는다. 대신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내 생각의 자리를 허락한다. 작가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처음 독자가 내 책을 집어 들어주는 것은 운이고 두 번째 집어 들면 내 실력이다.
두 권 다 마음에 들면 그는 '내 독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중 - 98page

결국, 나는 그녀가 자신의 책에서 말한 것 처럼 책 두 권으로 인해 독자가 될 것 같다.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은 단순히 글을 따라가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녀의 문장 속에서 나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여정에 가깝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깊은 공감을 남기는 그녀의 글은 내가 지향하고 싶은 글쓰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이제 그녀의 팬으로서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가 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독서량이 늘면서 내 삶의 작은 습관 중 하나도 변화했다. 그것은 바로 독서중 시계를 보는 습관이다. 예전에는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계에 눈이 갔고, 그럴 때마다 약간의 실망감이 밀려왔다. 분명 집중해서 꽤 오래 읽었다고 느꼈는데, 막상 확인해보면 겨우 10분 남짓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체감 시간으로는 적어도 30분은 책 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았는데, 짧게 흘러간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 느껴지곤 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참 묘하다. 흥미로운 문장을 따라가는 순간에는 시계 따위는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고, 오롯이 책 속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시계를 확인하는 그 짧은 순간, 마치 마법이 풀린 듯 현실이 스며든다. 


시계의 숫자는 나에게 냉정한 시간을 말해주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는 괜스레 초조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이 모든 과정이 어쩌면 독서에 몰입하는 법을 배우는 내 안의 작은 훈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시간이 자꾸만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독서의 1시간은 순식간에 나에게 3시간 이상의 피로감을 안겨주는 고된 정신노동으로 변해버린다. 책을 읽는 즐거움 대신, 머릿속에는 점점 불안감이 자리 잡는다. '최소 3시간은 묵묵히 앉아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이렇게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과연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때부터 뇌는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 이상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눈은 책의 문장을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자들이 점점 흐릿해지고, 생각은 딴 곳으로 흘러간다. 그러면 어김없이 하품이 찾아온다. 작은 틈새로 빠져나오는 하품은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공기의 흐름 같지만, 이내 서재를 가득 채운다. 그것은 단순히 공기의 문제가 아니다. 하품 속에 스며든 어둡고 무거운 공기들이 내 몸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책을 잡고 있는 손끝은 여전히 멀쩡한 듯 보이지만, 눈꺼풀은 마치 천근만근의 무게를 짊어진 것처럼 내려앉는다. 정신은 점점 느려지고, 마침내 나는 책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처럼 허탈하게 의자에 기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조차 나에게는 묘한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책을 펼칠 용기를 잃을 것 같아서, 한 번쯤은 하품의 늪을 넘어 집중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천근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해도 이미 내의지를 벗어난 눈꺼풀은 들어 올릴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요즘 들어 확실히 달라진 점이 있다. 책을 읽다가 시간을 확인하면, 예전처럼 "겨우 10분이 지났네"라고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 벌써 한 시간이 지났네?"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것은 단순한 체감 시간의 변화가 아니다. 나는 이제 한 시간을 온전히 책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변화는, 어떤 책들은 두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읽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 임경선 작가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는 바로 그런 책이었다. 오늘 나는 두 시간 동안 그 책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손에서 책을 놓을 틈도 없었고, 시계를 볼 여유조차 없었다. 단순히 흥미롭다거나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몰입감이었다. 그저 그녀의 문장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책이란,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좋기도 하지만, 읽는 동안 시간이 멈춘 듯한 몰입을 선사할 때 비로소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임경선 작가의 이 책은 바로 그런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차분하고 담백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아 두 시간 내내 의자에 붙들어 두었다. 그리고 나는 두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이 책이 내게 준 감정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책 한 권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잊게 할 수 있다니. 그녀의 글이 가진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아내가 조금만 더 늦게 일어났더라면, 나는 아마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깊이 몰입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일어나는 소리에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잠깐 멈춰서 생각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좀 더 자지, 왜 벌써 일어나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11시였는데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 자신에게 웃었다. 아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깊은 몰입의 시간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감정을 차분히 추스르고, 책을 내려놓은 뒤 아내와 막내와 함께 아점을 해결했다. 가족과의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볼링장으로 향했다.


사실 주말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내가 아내를 위해 정해둔 루틴이다. 마치 일상 속의 작은 약속처럼, 그 시간만큼은 그녀를 위한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평일 오전 내 루틴을 철저히 지켜왔듯이, 주말 오후의 루틴은 아내를 위해 비워둔다. 그렇게 나는 매니저처럼 일정을 챙기고 움직인다.


책 속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나의 하루는 또 다른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나를 위한 시간과 가족을 위한 시간, 그 균형이 주말이라는 무대 위에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해간다. 비록 아내의 등장으로 책을 덮어야 했지만, 그 덕에 또 다른 일상의 순간들이 채워졌다. 가족과의 시간은, 때로는 책의 한 장을 덮고 현실의 한 페이지를 여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쓰러지기 전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제는 확실히 파워도 자세도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체력이다. 병원에 오랜 시간을 보내며 두 게임만 쳐도 힘들어하던 그녀가, 요즘은 다섯 게임을 치고도 더 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는 안정적인 밸런스만 잘 조절하면,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느껴진다.


아내의 투지와 열정은 이미 우승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열정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우승컵을 들어올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그러나 스포츠란 투지와 열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꾸준한 연습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한동안 연습량이 부족했던 탓에 아직 실력이 완벽히 돌아오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는 그녀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의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 그녀의 눈빛이 작년 1월, 우승을 차지했던 그때와 똑같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과 저녁, 그녀의 눈에서 강렬한 투지와 결의가 빛나는 것을 본다. 그 눈빛은 나를 때로는 설레게 하고, 때로는 조금 무섭게도 한다. ㅎ


운동이든 삶이든, 결국 이기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내는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응원하며, 언젠가 우승컵을 다시 들어올릴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그녀의 눈빛이 매일 나에게 증명해주고 있다.


볼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내가 저녁 메뉴로 치킨을 제안했다. 그 말에 아내도 나도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 저녁, 치킨이라니. 그 한 마디에 이미 우리의 메뉴는 확정되었다. 집 근처 치킨집에서 두 마리를 포장해 들고 돌아오는 길, 기분이 묘하게 들뜨는 것을 느꼈다. 따뜻한 치킨 봉지를 품에 안고 걷는 순간은 어쩐지 주말의 하이라이트 같은 느낌이 든다.


주말 저녁 치킨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맥주다. 그런데 지금 나는 금주 중이다. 몸도 마음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나름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결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치킨과 맥주는 절대적인 진리라며 맥주 한 잔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나가 맥주 두 병을 사 들고 돌아왔다. 그녀의 확고한 태도 앞에서 나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고비가 찾아왔다. 금주 12일째, 마음속에 가장 큰 위기가 문을 두드렸다.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저녁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내와 나누는 한 잔의 맥주가 떠올랐다.

"둘이서 간단히 마시는 맥주는 술이 아니야.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데, 맥주 한 잔쯤은 음료수라고 봐도 되지 않아?"

라는 속삭임이 내 안에서 은근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속삭임을 막아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맥주 한 잔도 엄연히 술이야. 이렇게 마시겠다면 금주라는 말을 아예 쓰지 말지. 겨우 12일 만에 끝내려고 한다고? 이제 시작인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야?"


천사와 악마가 내 머릿속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악마는 부드럽게 설득했다. 

"이건 특별한 상황이잖아. 아내와 나누는 한 잔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사랑의 연장이야. 게다가 맥주 한 잔으로 무슨 금주 결심이 깨져? 그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야."


그의 논리가 꽤 그럴듯하게 들렸다. 한 잔 정도는 스스로를 이해해 주는 너그러운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천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금주는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 아니야? 네가 지금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더 큰 유혹이 왔을 때는 어떻게 할 건데? 12일 동안 잘 참아왔잖아. 이 순간을 넘기면 너는 더 강해질 거야."


나는 고민하며 맥주를 앞에 두고 잠시 멈춰 섰다. 


이 싸움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결정해야 했다. 한 잔의 맥주는 단순히 술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내가 내린 결심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시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과감히 천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혹의 순간에서 벗어나, 나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내는 맥주 한 잔을 들었고, 나는 막내와 함께 콜라 한 잔으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오늘, 금주를 위한 첫 번째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마음 한구석을 채웠다.


결국, 나는 악마의 유혹에 손을 뻗지 않았다. 맥주를 바라보며 웃었다. 


"악마와 천사의 싸움에서 내가 선택한 건, 바로 내 자신이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고, 내 안의 작고 단단한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닭 두 마리를 포장해 왔지만, 우리는 셋이서 다 먹지 못하고 이른 저녁을 끝냈다. 다른 집에서는 1인 1닭도 거뜬히 한다고들 하던데, 우리의 식탁은 조금은 소박했다. 그러나 그 소박함 속에 담긴 만족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가족 모두가 자연스레 자기만의 공간으로 흩어지는 그 평화로운 흐름이 좋았다.


나는 따뜻한 홍차 한 잔을 준비해,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 하루를 되새기며 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멋지다! 잘했다. 나는 의지가 있다. 나는 이겼다. 나는 할 수 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번져 나왔다. 이 작은 승리가 내일을 향한 더 큰 발걸음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그리고 나는 일기장의 첫 문장으로 이렇게 적었다. 


"금주 12일째, 나는 유혹을 넘어섰다."


정정당당하게, 주저함 없이 쓴 그 문장이 오늘 하루를 완성했다. 나를 위한 따뜻한 한 잔의 홍차처럼, 스스로에게 전하는 이 응원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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