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른 모든 것을 쉽거나 불필요하게 만들어 줄 단 하나 일은 무엇인가
금주 13일 째, 어제 저녁, 천사와 악마의 싸움에서 승리로 얻은 금주 덕분에 월요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은 어느때보다도 더 가벼운 느낌이었다. 작은 성취감으로 인해 다가오는 행복감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자주 느끼는 이 기분도 나의 변화 중에 하나 아닐까?
이 작은 성취감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그저 잠시 스쳐가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요즘 들어 부쩍,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크게 기뻐하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이전의 나는 왜 이토록 단순한 즐거움들을 놓치며 살았을까? 작은 승리를 축하하는 지금의 나와는 달리, 과거의 나는 늘 더 큰 무언가를 쫓아가며 현실을 외면했었는 지도 모른다.
아침의 루틴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명상으로 시작해 목표를 읽고 쓰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댓글을 남기는 일. 이 모든 과정이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러워졌다. 매일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다고 굳이 기록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 이 루틴도 점차 그런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 주 까지만 일기에 남기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런 이유다.
사람들은 흔히 21일이라는 시간을 습관의 기준점으로 삼는다.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말하듯, 우리의 뇌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 그 마법 같은 21일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 그 시점이 되면 이 행위들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완전히 스며들겠지.
이제 더 이상 '해야만 하는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짧은 시간들이 하루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처럼 느껴진다. 명상은 내 안의 고요를 깨우고, 목표를 읽고 쓰는 일은 내 의지를 새롭게 한다. 공감 댓글은 내 마음을 타인의 이야기와 이어준다. 이 소소한 습관들은 작은 물방울처럼 흘러들어 내 하루를 채우고 있다.
때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변화란 어쩌면 대단한 결심이나 화려한 행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단순한 일상의 반복에서 온다고. 이 루틴들이 내 삶에 더 깊게 뿌리내리기를, 그래서 더 많은 순간들이 이 자연스러운 평온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본다. 21일이라는 작은 목표를 넘어, 나 자신에게 새로운 일상을 선물하는 길이 되기를.
오늘, 새로운 책을 펼쳤다.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한동안 자기계발서와 인문학, 에세이에 몰두했던 나의 책장 한쪽 구석에는 역사라는 분야가 조금은 외면받고 있었음을 느꼈다. 책을 펼치며 나는 생각했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만들어온 토대이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연결고리라는 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그동안 읽었던 역사 관련 책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부분이 조선시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왕과 신하, 제도와 정책,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근현대사의 역사는 어쩐지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것은 교과서 속에서 만난 딱딱하고 정형화된 서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슈 한국사는 그 첫 장부터 나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근현대사를 주제로 한 첫 책을 읽는다는 점에서 묘한 설렘과 긴장이 섞여 있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선택들이 우리를 이끌어왔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이 책이 던지는 "이슈"라는 단어는 나에게 일종의 다짐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사건들 속에 숨겨진 쟁점과 고민, 그 흔적들이 지금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찾아보라는 메시지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금 역사를 마주하기로 했다. 조선의 화려함과 권력 다툼의 이야기를 넘어, 더 가까운 과거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고민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어쩌면, 이 책 한 권이 내가 잊고 지냈던 관심사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국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다. 한일, 한미, 대북, 한중 관계처럼 우리에게 밀접한 국제 정세 속에서도 그 흐름은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각국이 자신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높이고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은 협력이 아닌 대립으로 치닫는 시대의 초상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변국들 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지금의 이 상황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역사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협상의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사건들은 단순히 과거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거가 되고, 설득력이 되며, 때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내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뉴스를 보고 현재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배경을 알아야 한다. 한일 관계 속의 감정과 갈등은 식민 지배의 역사에서 비롯되었고, 대북 문제는 분단 이후 긴 세월 동안 얽히고설킨 국제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했다. 이런 맥락을 모르고 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나는 어쩌면 너무 작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존재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언젠가 나비효과가 되어 더 큰 변화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배우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단순히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작은 책임이기도 하다.
내가 펼친 책의 한 장, 혹은 뉴스의 한 줄이 이런 생각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국제 정세의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려는 나만의 작은 노력이 언젠가는 그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TV를 켜면 예능보다 더 많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뉴스다. 조만간 우리나라 대통령의 거취가 결정될 것이고, 동시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게 된다. 그 이후의 국제 정세는 어떻게 흘러갈지, 우리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뉴스는 각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패널들을 모셔 이야기를 꾸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이 내놓는 이야기들, 숫자들, 그리고 목소리들이 모두 설득력 있어 보일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가진 판단력은 흐려지고, 결국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들었다. 이슈 한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넘어, 나의 관점을 바로 세우는 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책이다. 뉴스는 빠르고, 강하고, 날카롭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감추어진 맥락과 편향이 존재한다.
역사는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사건들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 지을 때 비로소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 떠밀려가는 시간이다. 눈앞에 넘쳐나는 뉴스와 분석은 때로는 진실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과 다르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더 깊게 와닿는 것이 바로 역사다.
책을 펼치며 나는 다짐한다. 내가 듣는 뉴스 한 마디, 읽는 글 한 줄에도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르겠다고. 판단력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토대는 결국 내가 쌓아가는 지식과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믿으며.
역사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특히 한일 관계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면,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과거의 사건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까지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생생히 느껴지기에, 그 순간만큼은 다른 잡념이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 오롯이 역사와 나, 그 둘만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책 속에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세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다. 어떤 부분은 깊은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어떤 부분은 우리가 걸어온 길의 무게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 그 집중의 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몸은 정직하다. 잠시 고개를 들고 시간을 확인했을 때, 어느새 시계는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이토록 오래 앉아 있을 줄 몰랐던 나는 그제야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음 루틴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타투로 인해 잠시 멈췄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10일이라는 짧지 않은 공백이 남긴 흔적은 예상보다 깊었다. 그동안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낸 듯한 불편한 감정이 지속됐다. 아마도 이 기분은 내 루틴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어느덧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부터 다시 몸을 움직였다. 시작은 간단한 웨이트. 어깨에 남아 있는 통증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유산소 운동 전에 팔굽혀펴기를 넣었다. 지난주 월요일, 두 달 만에 했을 때는 50개도 간신히 하던 것이었는데, 오늘은 10분 동안 110개까지 할 수 있었다. 루틴은 몸에 스며들어 있었고, 기억은 빠르게 되살아났다.
최종 목표는 10분에 150개를 100일 동안 꾸준히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150개를 달성한 후 욕심을 내어 200개까지 도전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무리한 도전이 남긴 대가는 어깨 통증이었다. 이번에는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조금 더 현명하게 조절해보려 한다. 도전과 무리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실내자전거는 10일 만의 재회였다. 처음에는 강도를 낮추어 천천히 시작하려 했지만, 페달을 밟으면서 금세 몸이 적응하는 것을 느꼈다. 공백 후라 더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강도가 높은 구간에서 더 쉽게 느껴졌다. 익숙함이 다시 몸을 채우는 기분이 들어 기존의 루틴대로 페달을 밟았다.
운동 시간 동안 자기계발 영상을 틀어놓고 내 안의 동기를 다시 점검했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단순히 체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운동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재정의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10일의 멈춤은 나를 약간 뒤로 물러서게 했지만, 오늘의 운동은 그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내 루틴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시작이었다. 앞으로 100일 동안의 도전은 목표를 향한 발걸음일 뿐 아니라, 내 자신과의 약속을 이어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운동하며 시청한 영상은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욕망을 자극하는 "하와이 대저택"이었다. 자유와 여유, 그리고 그곳에서 누릴 삶을 꿈꾸게 만드는 영상은 항상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오늘 손에 든 책은 원씽. 작년 초에 읽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당시 나는 새벽 출근 후, 고요한 사무실에서 이 책을 읽다가 머리를 맑게 울리는 문구를 만났다. 그 순간, 감동이 너무 커서 포스트잇에 적어 내 컴퓨터 모니터에 붙였다. 그 문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응시하며 매일 나의 집중력을 환기시킨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로, 내 일상의 방향성을 정리해주고 있다.
오늘 영상을 보며, 그 문구가 다시 한번 깊게 와닿았다. 영상의 이야기 역시 그 메시지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다양한 일에 집중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한 가지 일에 모든 역량을 몰입하라." 이는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더 나은 성취를 위한 삶의 태도였다. 오늘 영상에서 나왔던 내용 중 기억나는 문장 몇 개를 적어본다.
“오늘 다른 모든 것을 쉽거나 불필요하게 만들어 줄 단 하나의 일은 무엇인가?”
“성공 도미노 효과를 기억하라, 내 앞에 있는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것에 집중하라”
“인간의 세포는 80일이면 몸 속의 모든 세포는 전부 교체된다. 그러니 인간은 80일 마다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며, 1년 전에 느꼈던 그 감동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원씽이라는 책이 던져준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참 묘하고도 감사했다. 그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고, 오늘의 나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불어넣었다
샤워를 마친 후, 자연스럽게 생활의 루틴으로 이어졌다. 정돈된 하루의 리듬 속에서 움직이는 이 시간들은 마치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작은 의식 같았다. 집안일을 하나씩 마무리하고, 두 시가 가까워오자 간단히 계란과 두유로 허기를 달랬다. 단백질을 보충하는 이 시간은 짧지만 소중하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순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샤워 후 책상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던 중,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원씽을 읽고 남겼던 후기가 생각났다. 1년 전, 나는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고 어떤 감정을 글로 남겼을까? 궁금증이 마음 한구석을 채웠다.
블로그에 접속해 서평을 찾아냈다. 게시된 날짜는 2024년 1월 24일, 오후 9시. 그날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글을 미리 작성하고 예약 발행을 해둔 것이리라. 그 시간의 나는 아마 책과는 먼,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겠지. 흐릿한 기억 속에서, 술의 쓴맛과 함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1년 전, 내가 써두었던 서평을 열어본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화면 가득 채운 글자들. 띄어쓰기와 줄 바꿈 없이 빼곡히 적힌 문장들. 여백이 없는 글은 마치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벽처럼 느껴졌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글이라 표현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해 상당히 무심하고 서툰 글이었다.
혹시나 싶어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무려 234개의 맞춤법 오류. 한 문장 한 문장, 나름의 감동과 깨달음을 담으려 했던 당시의 글은 어긋난 표현들로 가득했다. 그런 글을 누군가 읽고 공감해 주길 바랐던 나 자신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마주하는 순간은 예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부끄러움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날의 서평은 부족함의 흔적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글을 통해 배우고 고쳐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깨달았다.
물론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읽는 사람의 눈앞에서 숨이 막힐 것 같은 글을 조금은 정리하기로 했다. 맞춤법을 수정하고, 문장 사이에 여백을 넣으며, 글의 호흡을 조정했다. 그렇게 조금씩 글을 정돈하며 느꼈다. 글을 다듬는 시간은 단순히 결과물을 개선하는 과정이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을 더 잘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서툰 서평은 나의 출발점이었고,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기회였다. 글은 단순히 기록을 넘어, 나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다듬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수정된 서평을 저장하면서, 나는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졌다. 오늘의 글도 언젠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곧 내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계획했던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탁에 아내와 마주 앉았다. 서로의 하루를 나누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 그 짧은 대화 속에는 하루의 무게와 작은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제 이 저녁 시간은 나 혼자만의 루틴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저녁 식사는 되도록 6시 이전에 마치기로 했다. 그 뒤로는 7시까지 함께 TV를 보거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시간을 공유하는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따뜻하고 잔잔한 순간이다. 그리고 7시부터는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책을 읽고, 일기를 마무리하며 나 자신을 정리한다. 이 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그리고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아침부터 점심까지의 독서 시간도 물론 소중하지만, 저녁 시간은 더욱 특별하다. 이것은 내가 금주라는 선택으로 얻은 ‘금 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금주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이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술로 채워졌을 시간을 대신해 얻은 이 여유는 나에게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7시간인 듯한 충만함을 선물한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읽은 문장과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남기며, 하루의 마지막을 나의 손으로 채우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금주의 선택은 단순히 술을 멀리하는 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을 다시 설계하고, 잃어버렸던 시간의 가치를 되찾는 과정이었다. 하루하루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충만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내와 함께한 저녁의 소소한 대화와 나만의 조용한 독서 시간은 그 변화의 증거다.
이 시간들은 나에게 하루라는 삶의 조각을 더 깊고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도록 해준다. 오늘도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일의 나에게, 또 이 순간을 함께 나눈 가족에게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