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 잡념을 버리는 시간
금주 14일 째, 명상을 마치고 문득 작년에 처음 명상을 시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명상이란 게 대체 뭘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켜고 "명상하는 법"을 검색했던 나를 떠올리면 조금은 웃음이 난다.
수많은 영상 속에서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이 반복됐고, "제3의 눈동자를 찾아라"는 신비로운 지침이 쏟아졌다. "잡념을 버려라"는 권유는 어쩌면 가장 잔인하게 느껴졌던 조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상의 말들을 따라 하며, 명상 음악을 틀고 명상 프로그램까지 시도해봤다.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명상 세계에 발을 들이려 노력했던 모습들이 선명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노력은 결과적으로 나를 더 큰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쩌면 그 이유는 간단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명상에도 정답이란 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명상 유튜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결국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 누구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 안에서 들려오는 진짜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 깨달음은 명상을 시작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가벼움을 가져다주었다.
사실 명상을 하며 제일 힘든 부분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잡념들은 결국 내가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상은 힘들게 만 느껴졌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온갖 생각들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때 나는 "명상은 내 체질에 맞지 않나 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포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퇴사 후, 새벽 시간을 나만의 루틴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로 다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냥 앉아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 앉아 약 10분간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그냥 의미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시간이 조금씩 단축된다는 것이었다. 명상 초기에는 한번 떠오르는 생각들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물로 명상을 하는 내내 잡념들로 가득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면서부터 이 잡 생각들이 줄어든 다는 것이다.
조금씩 잡념의 떠오르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면 신기하게도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마치 머릿속 소음이 잦아들고 고요만이 남는 기분이랄까. 이런 상태를 표현하려 하면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내가 느낀 진짜다.
집중이라는 단어가 그저 막연하게 느껴졌던 초기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 방식을 설명하고 싶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하면 머뭇거리게 된다. 너무 단순해서, 아니면 너무 모호해서일까?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휴대폰 알람을 10분으로 맞춰 놓고, 언제 10분이 끝나나 하는 생각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10분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고, 끝이 나기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 초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초조함 속에서조차, 나는 명상을 계속해 나갔다. 그저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쌓이고, 마음의 호흡이 조금씩 더 깊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10분을 견디기 위해 알람에 의지하며 시작했던 명상이 이제는 30분이 자연스러워졌다. 놀랍게도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눈을 뜨면 25분에서 30분이 흐른다. 시간의 흐름에 초조했던 내가, 이제는 그 시간의 고요 속에서 나를 잃는 대신 나를 찾아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잡념의 비중이다. 이전에는 잡념과 싸우느라 명상의 시간 대부분이 소란스러웠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치 어지럽게 떠다니던 구름이 걷히고, 내가 보고자 하는 하늘을 온전히 마주하는 기분이다. 이 변화는 작은 것 같지만, 내겐 아주 큰 깨달음이었다.
요즘은 명상이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명상 속에서 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하고, 평소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감정이나 아이디어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잊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명상을 시작할 때는 그저 막막하고 따분했던 이 과정이, 이제는 내 삶 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고요를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명상의 재미를 조금씩 더 느끼고 있다. 마치 마음의 모퉁이마다 작은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으로, 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지금은 호흡을 세는 것도, 잡념을 버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단지 조용히 앉아 나 자신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다.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명상의 시간은 어느새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그렇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오늘도 목표 읽기와 쓰기, 그리고 공감 댓글 표현하기를 마친 뒤, 어제 읽다 잠시 내려두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기며 느낀 점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된 순간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역사가 현재와 분리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책 속에서 만난 이야기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깊이 연결된 흔적들이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또 어떻게 방향을 바꾸는지, 그 이야기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깨달음은 짧은 시간 안에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묵직했지만, 그 깊이 있는 느낌들을 자세히 풀어놓기 위해 “마부자의 독후감”에 정리해 두었다. 오늘 일기에서는 그저 이 감정의 한 조각만 남겨두려 한다.
오늘 배운 건 단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무지함을 인정하고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다시 펼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내 사고에 가장 크게 변화를 준 것은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맞고 틀리다, 옳고 그르다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역사는 그 본질을 잃고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역사는 과거다.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해석할 때, "만약에"라는 의문을 붙이는 순간부터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만약에 나라면", "만약에 이랬더라면" 같은 가정을 덧붙이는 것은 결국 현재의 나와 우리의 시각을 과거에 투영하는 왜곡된 렌즈를 만드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낸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더 나아가, "나였다면", "우리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의 사고는 결국 과거의 복잡한 맥락을 간과하고, 이로 인해 현재의 이슈와 논란을 더 부추기는 요소가 된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침략, 수탈, 전쟁, 반윤리적 행위를 정당화하자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비윤리적 행위들에 맞서 철저히 대응하고, 필요하다면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감정이 아닌 냉철한 시선으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논쟁과 언론의 이념적 편향은 역사 인식을 이분법으로 갈라놓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과거를 더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 위험성을 키운다. 그래서 더욱이, 역사를 바라보는 데 필요한 것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관점이다.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과거를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오늘 책을 통해 얻은 이 통찰은 나에게 단순한 깨달음을 넘어, 앞으로의 삶과 사고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새로운 문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손을 책 위에 얹은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읽은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억압의 역사와 그 속에서의 아픔을 마주하며, 나도 모르게 뜨거워진 피가 온몸을 돌았다.
그러나 책이 전한 메시지는 감정적인 격노에 머물지 않고, 냉정한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의 열기를 식히고, 차가운 피로 그것을 대체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 루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차가운 피를 다시 데우는 시간, 운동이었다. 목표한 팔굽혀펴기를 마치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땀이 배어나기 시작하며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 열기는 단순히 감정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의지에서 오는 에너지였다.
오늘 함께한 영상은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 <잠들어 있는 성공 시스템을 깨워라>를 다룬 내용이었다. 사실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알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존재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만큼 자기계발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 그는 단순한 유명인 이상의 존재였다. 내 퇴사라는, 나로서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퇴사라는 선택은 나를 자유롭게 만든 동시에, 내 삶의 방향성을 다시 정립하게 해 준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그 순간에 그의 말은 마치 나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용기를 심어주는 조언 같았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깨우는 자극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적당히 뜨거워졌다. 피로와 열기가 뒤섞인 이 기분은 책을 읽으며 차갑게 다잡았던 내 사고와 묘하게 균형을 이룬다.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강조했던 "성공 시스템"이라는 것이 단지 대단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나 자신을 넘어서는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이렇게 책과 운동, 그리고 생각들이 이어지며, 나는 조금 더 나아진 내일의 나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영상 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 하나를 정리하면
타인에게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원인에 대한 이유를 알려준다
1. 합리화: 스스로 마음속에서 싸우는 당사자기 되려는 논리를 제거하라
2. 동일시: 마치 내가 그 일에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와 상황을 분리시켜라.
3. 배려의 결여: 모두가 1의 배려를 하고 있는데 당신만 10의 배려를 원하지 마라
4. 원망: 모든 원망을 끊어내라, 그 누구도 어떤 상황도 원망하지 마라!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은 정말 하나도 흘려들을 것이 없는 명언들로 가득 찬 내용들이다. 조만간 그의 책을 읽기로 마음 먹고 리스트에 넣어 두고 운동을 마쳤다.
오후가 되자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 직장에서 회식이 있다고 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저녁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오늘은 막내와 단둘이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날이다. 외출을 다녀온 막내의 얼굴을 보니 집밥을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늘은 뭐 먹지?" 하는 내 질문에 “아빠는 뭐 드시고 싶은데요?” 하고 되 묻는 다는 건 뭔가 색다른 것을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오늘은 늘 하던 메뉴 대신, 가볍고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간단한 분식으로 포장을 해와서 먹기로 결정했다.
분식이라는 선택이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날의 저녁은 막내와 나만의 작은 잔치 같은 느낌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음식의 종류보다 더 중요한 건, 함께하는 이 작은 순간들이 쌓여가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도 그렇게,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의 한 끼가 완성되었다.
오늘은 화요일, 볼링장에 가는 날이다. 이른 저녁을 서둘러 마치고 아내를 회식 장소에서 픽업한 후 볼링장으로 가기로 계획했다. 출발 전부터 일정이 촘촘했지만, 그래도 화요일 저녁의 소소한 즐거움을 기대하며 차를 몰았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호텔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호텔 뷔페라는 말에 차들이 몰려 주차 공간을 찾기도 어려운 데다, 몇 바퀴를 돌며 확인했음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며 전화를 반복하는 사이, 차 안의 온도는 점점 떨어지고 내 마음속 짜증은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로의 위치를 설명하며 10분이 흘렀다. 이상하게도 이야기가 자꾸 엇갈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내가 놓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호텔 이름이 뭐야?” 아내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내가 지금 서 있는 호텔과 전혀 다른 위치였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헛걸음을 했다는 사실도 그렇고, 시간도 지체되었으니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추운 날,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깊은 숨을 들이쉬며 다시 물었다. “정확히 어디야? 거기로 갈게.”
그제야 아내가 자신이 호텔 이름을 잘못 알려준 것 같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왔다. 순간 화가 났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녀도 나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의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 테니까.
전화를 끊고 난 뒤, 차 안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아내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의 건강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인데, 왜 출발 전에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았을까? 그런 사소한 배려가 부족했던 게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의 혼란은 어쩌면 작은 불편으로 끝났지만, 마음 한편에는 조금 무거운 감정이 자리 잡았다. 아내가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 또한 같은 책임을 공유하고 있었다. 애초에 모든 것을 내가 더 꼼꼼히 확인했더라면, 그녀가 추운 길가에서 기다리는 일도, 내가 헤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도 불완전하지만 우리 다운 한 페이지가 채워졌다. 오늘의 소동은 조금 불편했지만, 돌이켜보면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로 남을 것이다. 볼링장에 도착해서는 공 하나를 굴리며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아내의 회식 장소가 볼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아내를 픽업한 뒤에도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차 안에서의 짧은 대화는 서로의 오해를 조금씩 풀고, 차갑게 식을 뻔한 분위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약간의 실수와 혼란은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아내는 볼링을 시작했고, 나는 휴게실에 앉아 책을 펼쳤다.
회원이 많지 않아서 예상보다 4게임이 빨리 마무리되었다.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순간, 몇몇 분들이 인근 치킨집에서 간단히 치맥을 하자며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술 끊었습니다.”
짧은 한마디가 내 결심을 다시 한번 굳건히 해줬다. 유혹은 예상보다 쉽게 다가왔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순간의 성취감은 기대보다 더 크고 뿌듯했다.
아내와 함께 차에 올라 출발하며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단순히 한 번의 술자리를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 그리고 그런 선택을 스스로 지켜낸 내 모습이 오늘 하루의 진짜 성과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어쩌면 별일 없는 평범한 하루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이겨낸 작은 싸움과 함께 만들어낸 따뜻한 순간들이 하루를 특별하게 채워주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내 삶에서 작은 승리를 쌓아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