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은 눈이 내릴 것처럼 공기의 밀도가 유난히 무거웠고 어둠은 평소보다 낮게 내려앉아 있었으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가운 기운이 폐 속 깊이 스며들어 생각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런 새벽에는 무언가를 결론 내리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기 전에 잠시 차한잔으로 몸을 데우며 서재에 냉기를 나와 차의 온기로 바꾸는 의식을 시작했다.


오늘 읽은 <상처받지 않은 영혼>의 문장은 세상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의식 속으로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오라는 말로 시작했다.


인식의 위치가 바뀔 때 세상도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

“의식 속으로 물러나게 제자리로 돌아오면 이 세상은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지켜보고 있는 무엇일 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느낌은 없다. 세상을 그저 당신이 인식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놔두기만 하면 세상도 당신을 있는 그대로 있게끔 놔둘 것이다.”


상처 받지 않는 영혼 중에서 - 71page



인식.

1. 대상에 대해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것.

2. 감각, 경험, 생각을 통해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


인식이란 단어는 사전적 정의의 문장을 벗어나는 순간 갑자기 삶의 난이도를 끌어올리는 단어로 다가온다.


나는 인식의 사전적 의미가 알아차림이라는 설명을 다시 읽으며 그렇다면 나를 인식한다는 말은 결국 나를 안다는 뜻이 되는데 정작 이 간단한 문장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아는 것은 무지를 아는 것뿐이라고 말했던 이유는 겸손의 미덕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식이 어렵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이해해 보게 되었다. 그것은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인식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다는 생각이었다.

time-3327402_1280.jpg?type=w1

인식을 의식하면 할수록 인식은 왜곡되는

아이러니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나를 정확히 보겠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특정한 생각과 감정에 나를 고정시키게 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나를 인식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특정 감정이나 생각에 나를 맡긴 채 그것을 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순간 인식은 관찰이 아니라 동일시로 변해 버린다.


인식의 오류는 감정과 부딪칠 때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불안한 상태에서는 세상이 위협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지친 상태에서는 삶 전체가 과도하게 무거워 보이며 우리는 그 느낌을 사실이라고 착각한다.


문제는 감정이 일어나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현실의 전부로 확장시키는 인식의 습관이다.

이 습관이 쌓일수록 세상은 점점 견디기 어려운 공간으로 굳어간다.


인식에는 나를 인식하는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차원도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는 이 두 영역을 거의 구분하지 않은 채 뒤섞어 사용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표정과 말투와 반응을 읽어내는 능력은 분명 필요한 감각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시선을 기준으로 나를 설명하게 되었다.

man-4448884_1280.jpg?type=w1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를 바라보는 자리는

서서히 타인에게 넘어간다.


결국 나는 나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대신 인식하고 있게 된다. 그 결과 자신에 대한 판단은 점점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회적 인식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분위기와 평가의 언어는 자신도 모르게 내 인식의 틀을 형성하며 내가 보는 나의 얼굴을 미세하게 조정한다.


나는 나를 보고 있다고 믿지만, 그 시선은 이미 사회의 언어를 빌리고 있으며 그 언어는 언제나 효율과 성과와 비교의 방향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인식 속에서 가장 먼저 흐려지는 것은 정작 나 자신이다.

character-430544_1280.jpg?type=w1

나는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어떻게 보일지를 먼저 계산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어떻게 해석될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투병의 시간은 이런 인식의 작동 방식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냈는데 몸의 아픔 위에 해석이 덧씌워질수록 고통은 신체를 넘어 존재 전체로 번지며 삶의 범위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책이 말하는 의식 속으로 물러난다는 태도는 회피나 부정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것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이며 문제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인식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실천의 차원에서 나는 인식을 더 정교하게 만들기보다 인식의 방향을 점검하는 쪽을 선택해 보려 하며 지금 이 생각은 관찰인지 아니면 끌려감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을 인식하되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연습과 사회적 인식을 참고하되 나를 설명하는 최종 언어로 사용하지 않는 태도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EB%9E%A9%EA%B1%B8_(18).png?type=w1

인식은 선택의 문제이지 복종의 문제가 아니다.


이 구분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삶의 긴장은 조금 느슨해진다.


인식은 모든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이 되고 나를 완벽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삶은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는 인정으로 다가온다.


나는 ‘인식’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인식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려놓고 바라보는 일이다.





이전 01화‘자아’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