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오늘도 어둠이 가득한 새벽이었다. 밤과 아침의 경계가 흐릿한 이 시간에 서재의 불을 켜고 책을 펼치면 세상은 잠시 말을 멈춘 듯 고요하다.


늘 이 정적 속에서만 내면의 소리를 조금 더 정확히 듣게 된다. 이 새벽에 책을 읽는 이유는 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질문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에 가깝다.


오늘도 영혼과 내면의 자유라는 말이 담긴 책을 다시 펼치며, 과거 나의 생각들이 멈췄던 그 곳에서 현재의 생각을 더하며 그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었다.

“고통이 건너편에는 황홀경이 있다. 자유가 있다.


당신의 진정 훌륭한 면들은 고통의 층들 건너편에 숨겨져 있다. 그 건너편으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저 고통이 거기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느껴보리라고 마음먹으면 된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 중에서 - 181page


고통.

1. 질병, 상처, 피로등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느끼는 괴로움.

2, 슬픔, 불안, 상실, 좌절등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아픔과 괴로움.


나는 그동안 고통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해 왔고 고통은 곧 아픔이며 괴로움이기 때문에 고통이 예상되는 선택은 최대한 미루거나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어왔다.


사전이 말하는 고통의 정의 역시 질병이나 상처로 인한 육체적 괴로움과 슬픔 불안 상실 좌절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아픔을 말하고 있으니 고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는 거의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고통이 따를 것 같은 선택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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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러섬을 기다림이나 신중함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나 자신을 설득해 왔다.


그러나 오늘 이 문장을 통해 나는 고통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쩌면 중요한 지점에서 크게 어긋나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고통을 피하겠다고 말하면서 결국 나는 내가 가고자 했던 많은 방향과 가능성을 포기하는 수단으로 고통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고통 없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는 태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우리는 그 상태를 기다림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주저함이자 포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렇다면 모든 성공과 성장은 반드시 고통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고통 없이도 원하는 바를 이룬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 사실은 고통에 대한 나의 새로운 사유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들에게 고통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고통이 이미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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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통은 괴로움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의미가 분명했기 때문에

고통으로 인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버거운 고통으로 느껴지고 어떤 이에게는 감내할 수 있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고통이 의미 없이 주어질 때 사람은 그것을 피하려 하지만 고통이 목적과 연결될 때 사람은 그것을 통과한다.


그래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고통의 크기가 아니라 고통을 해석하는 방향에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의미 없는 고통은 삶을 소모시키지만 의미가 부여된 고통은 삶을 확장시키며 그 차이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인식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고통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통이 거기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느껴보라고 말하며 도망치거나 제거하려 하지 말고 통과하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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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나에게 고통을 견디라는 명령이 아니라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제안처럼 다가온다.


물론 질병이나 상처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견딜수는 없다.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고통은 정신적 고통임으로 오늘의 이야기에서 잠시 제외해 두기로 한다.


현실을 살아가며 우리를 가장 자주 흔드는 고통은 불안과 상실과 좌절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이 괴로움은 나를 해치는 적이라기보다 변화의 문 앞에서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감각에 가깝다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진다.


투병의 시간을 떠올려 보면 고통은 나를 멈추게 한 동시에 나를 가장 깊은 질문 앞에 세워 놓았고 그 질문들은 이전의 나로는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지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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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 달라질 필요가 있다.


고통을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보기보다 지나가야 할 과정으로 인식할 때 선택의 폭은 오히려 넓어진다.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선택을 줄이는 삶보다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선택을 넓히는 삶이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고통은 나에게 포기의 이유가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기준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있다.


고통은 내가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으며 이전과 다른 삶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로 다가온다.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여전히 어떤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고통은 아픔이 아니라 통과이며 부정이 아니라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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