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은 새벽이었다. 밤과 아침이 섞여 있는 이 시간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차가웠으며 서재 안에는 책장 사이로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 고통이라는 단어를 내려놓은 자리에 오늘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단어가 놓이게 되었고 나는 그 단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려 했다.


책장을 넘기다 만난 문장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누가 당신을 굶기고 독방에 가두더라도 간디처럼 그저 기꺼이 경험하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저 당신 앞의 삶을 즐겨라. 무척 어려운 일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아질 것도 없지 않은가?


당신이 아무런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히게 됐다면 즐기는 편이 낫다. 즐기지 않는 것이 무슨 득이 되겠는가?


그래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 결국 행복하게 남아 있으면 당신이 이긴 것이다. 그것을 당신의 게임으로 삼으라. 어떤 일이 생기든 간에 그저 늘 행복하라.”


상처받지 않는 영혼 중에서 - 236page


경험.

1. 실제로 겪어 보거나 직접 보고 들음.

2. 겪은 일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기능.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저 기꺼이 경험하라는 말은 위로처럼 들리기보다 오히려 냉정한 조언에 가까웠고 나는 그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굶주림과 독방과 감옥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도 그저 경험하라고 말하는 이 문장은 삶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속에는 외면하기 어려운 진실이 담겨 있었다.


경험의 정의만 놓고 보면 경험은 중립적이며 좋고 나쁨의 판단이 붙기 전의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삶 속에서 경험은 결코 중립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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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험을 늘 평가하며 받아들이고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으로 나누어 기억하며

그 기준에 따라 다음 선택을 결정한다.


나는 그동안 경험을 결과의 관점에서만 정리해 왔고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으면 애초에 경험 자체를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고통에 대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경험 역시 나에게는 늘 조심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거나 상처를 남길 것 같은 경험은 되도록 멀리 두고 안전한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왔다는 고백이 뒤늦게 따라온다.


그러나 이 문장은 묻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나아질 것이 있는가라고.


경험을 피한다고 해서 삶이 더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쉽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경험하지 않는 삶은 상처를 줄일 수는 있어도 깊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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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지 않음으로써 안전해질 수는 있지만

동시에 비어 있는 부분도 함께 늘어난다.


책은 경험을 즐기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즐김은 쾌락이나 낙관이 아니라 결과와 상관없이 그 상황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환경은 통제할 수 없지만 경험을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경험이란 일이 아니라 태도라는 생각에 가까워진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불행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삶의 전환점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바로 이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경험은 늘 이미 일어난 이후에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투병의 시간 역시 나에게는 하나의 경험이었다. 그 시간은 분명 쉽지 않았고 반복해서 피하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경험을 겪는다는 것은 반드시 성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경험을 외면하지 않고 통과했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들고 삶의 다양한 층위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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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험을 선택하겠다는 욕심보다

어떤 경험이 오더라도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에 가깝다.


경험을 통제하려 들수록 삶은 불안해지고 경험을 허용할수록 삶은 유연해진다. 이 차이는 삶의 난이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또한 경험이 있다는 것은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고 아직 삶과 관계 맺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경험을 줄인 삶은 안전할 수는 있어도 풍부하지는 않다. 반대로 경험을 허용한 삶은 때로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 간다.


이 새벽의 서재에서 나는 책장을 덮으며 경험이라는 단어를 다시 내려놓는다.


나는 ‘경험’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경험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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