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오늘도 어둠이 가득한 새벽이었다. 아직 밤이 물러나지 않았고 아침이 들어오기에도 이른 이 시간에 서재의 불을 켜면 세상은 잠시 멈춘 것처럼 고요해진다.


이 고요 속에서만 생각의 속도를 낮출 수 있고 내 안에서 미처 들리지 않던 소리들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새벽에 책을 읽는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 나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에 가깝다.


하루를 통과하며 흩어졌던 생각과 감정들이 이 시간에 다시 제자리를 찾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 자신에게 천천히 돌아온다.


이번주 새롭게 다시 펼친 책에서도 나는 답보다 질문에 더 오래 머물렀다. 집중과 산만함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몰입이라는 단어였다.

“내가 흐름속에 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흐르는 것의 목표는 계속 흐르는 거예요. 정상이나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안에 머무러는 거예요.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흐르는 거에요. <중략>


몰입은 하고 있는 일에 너무 푹 빠진 나머지 모든 자아 감각을 잃은 상태, 시간이 사라진 듯 상태, 경험 그 자체의 흐름을 탄 상태를 뜻한다.


몰입은 우리가 아는 것 중 가장 깊은 형태의 집중 상태다.”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 85 page


몰입.

1. 어떤 일이나 대상에 깊이 빠져들어 다른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상태.

2. 정신이나 감정이 한 대상에 완전히 집중됨.


책은 몰입을 설명하며 자아의 감각이 흐려지고 시간이 사라진 듯 느껴지는 상태라고 말한다. 경험 그 자체의 흐름을 타는 순간이라는 표현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몰입의 이미지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그동안 몰입을 목표처럼 생각해 왔다.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었고 몰입하지 못하는 상태를 나태함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해 왔다.


그래서 집중이 흐트러질 때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그 말은 나를 다독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긴장시키는 주문처럼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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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 말하는 몰입의 정의는

한 대상에 깊이 빠져들어 다른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이 정의를 곱씹다 보니 몰입은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태라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진다.


몰입은 억지로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에 힘을 줄수록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몰입은 쥐려는 순간 멀어지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스며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나의 하루를 떠올린다. 하루 종일 많은 일을 하면서도 끝에 가면 무엇 하나 온전히 기억나지 않는 날들이 있다.


반대로 짧은 시간임에도 유독 선명하게 남는 순간들이 있고 그 차이는 대부분 몰입의 유무에서 갈린다.


몰입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것은 언제나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 찾아왔다. 시간을 재거나 목표를 세우지 않았을 때 오히려 나는 깊이 들어가 있었고 그 상태를 인식하는 순간 이미 빠져나와 있었다.


몰입은 집중하고 있다는 자각이 사라진 상태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만큼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비로소 몰입은 완성된다.


그래서 몰입은 의식의 확장이 아니라 의식의 소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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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경계가 흐려지고 경험만 남는 상태에서

사람은 가장 깊이 현재에 머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결과를 의식하며 다음을 준비하도록 요구받는 환경 속에서 몰입은 쉽게 끊긴다.


책은 말한다.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이 문장은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든다.


그동안 나는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탓해 왔다. 하지만 집중을 방해하는 환경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를 향한 평가의 강도가 조금 낮아진다.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산만함 그 자체가 아니라 산만함을 정상으로 만드는 생활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끼어들 수 있는 알림과 비교 그리고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속도가 몰입의 자리를 조금씩 잠식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투병의 시간을 떠올리면 몰입이라는 단어는 조금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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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의 나는 무언가에 집중하려 애쓰지 않았고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치료 일정과 몸의 반응 그리고 하루의 컨디션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고 나는 그저 주어진 하루를 통과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때 나는 가장 깊이 현재에 머물러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도 과거에 대한 후회도 잠시 힘을 잃고 오늘의 몸과 오늘의 시간만이 또렷해졌다.


통증이나 피로가 심한 날에는 생각이 멀리 가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지금의 감각에 붙잡혀 있었고 그 상태는 의외로 산만하지 않았다.


투병 중의 몰입은 어떤 일을 해내는 데서 오지 않았다.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시고 몸의 신호를 살피는 아주 단순한 행위들 속에서 나는 깊이 들어가 있었다.


아픔이 있는 순간에는 생각이 한곳으로 모인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없었다.


그 몰입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 낸 상태였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를 처음으로 자각했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다는 감각은 이전의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그 경험은 몰입이 반드시 생산성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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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의 시간은 나에게 몰입을 가르쳐 주었다기보다

몰입이 이미 삶 속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집중하려 하지 않아도 삶은 스스로 나를 현재로 데려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다시 몰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몰입은 애써 만드는 상태가 아니라 삶이 나를 붙잡아 주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열리는 자리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이제 몰입을 실천의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몰입을 목표로 삼기보다 몰입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에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


긴 시간을 확보하려 애쓰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중간에 끊기지 않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집중의 깊이는 시간의 길이보다 흐름의 연속성에서 만들어진다.


한 문장을 끝까지 읽고 한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며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연습이 몰입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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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은 나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몰입은 나를 더 분명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또렷하게 느끼게 한다.


몰입의 시간이 길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라도 흩어지지 않았다는 기억은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새벽의 서재에서 나는 책을 덮으며 몰입이라는 단어를 다시 바라본다.


몰입은 더 많은 것을 해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온전히 경험하기 위한 상태에 가깝다. 그리고 그 상태는 애써 얻는 것이 아니라 허용할 때 찾아온다.


나는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몰입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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