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창문 저편의 하늘 빛이 계절이 지나고 있음을 말해주듯 어둠의 기운이 약해진 새벽. 차가운 하늘은 눈이라도 쏟아질 듯 무거운 밀도로 피부에 가라앉았다.


길게 이어진 한파 탓에 서재의 공기는 오늘도 더욱 단단했고, 짧은 명상을 하듯 숨을 고르며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을 비우기보다는 생각이 흘러갈 수 있는 여백을 잠시 열어두는 시간이었다. 세상의 속도와 분리된 이 고요와 함께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유독 설계라는 단어 앞에 오래 머물게 되었다.

“문제는 핸드폰이 아니라 현재 핸드폰이 설계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현재 인터넷이 설계되는 방식과, 그 방식의 설계자들에게 제공되는 유인책이다.


우리는 자신의 핸드폰과 노트북, 소셜미디어 계정을 계속 보유하면서 집중력을 훨씬 잘 발휘할 수 있다. 이것들이 다른 종류의 유인책 위에서 설계된다면 말이다.”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 200page


설계.

1.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체의 틀과 과정, 방식을 사전에 구상하는 것.

2. 구체적인 형태와 기능을 미리 계산하고 정리하는 작업.


우리는 흔히 문제를 개인의 의지나 태도에서 찾는다.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약해서이고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는 내가 절제하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방향을 바꾼다. 개인의 선택 이전에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설계부터 살펴보라고 말한다.


설계라는 단어의 정의를 곱씹다 보면 설계는 중립적인 단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설계는 언제나 특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은 달라진다. 유인책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선택은 자연스럽게 유도된다.


실제로는 스크롤을 멈추지 않도록 설계된 핸드폰의 구조가 문제이며 실상은 오래 머물수록 보상이 주어지는 인터넷의 설계가 문제인 것이다. 이런 설계는 개인의 약점을 공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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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가 쉽게 흩어진다는 인간의 특성을 활용하고

그 위에 수익 구조를 얹는다.


그 결과 우리는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집중 불가능한 상태는 철저히 설계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잠시 이 설계라는 용어를 사회의 개념으로 확장해 본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 역시 개인의 도덕성보다 구조의 설계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


경쟁이 과열되는 사회는 경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비교가 일상이 되는 환경은 비교를 멈출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쉼을 죄책감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역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내 삶을 내가 설계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어떤 선택을 할지 무엇을 소비할지 어떤 속도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선택의 상당 부분은 이미 누군가가 의도해 놓은 설계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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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유는 미리 배치된 선택지 안에서만 허락된다.


어디에 시선이 머물지 무엇에 반응하도록 유도되는지는 개인의 성향 이전에 구조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삶을 설계한다는 말은 단순히 계획을 세운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세상 속에서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타인이 만든 설계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강요하지 않고 제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유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자유의 범위는 이미 정해져 있고 선택지는 미리 배열되어 있다.


이 설계를 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설계를 인식하는 감각을 키우는 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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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유인하는 설계는 대개 속도를 요구한다.


지금 결정하라고 말하고 놓치면 손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즉각 반응하지 않고 하루쯤 미루는 것만으로도 많은 유인 설계는 힘을 잃는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 시선이다. 계속 흔들리고 계속 넘어간다면 그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설계가 강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 인식만으로도 우리는 불필요한 자기비난에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다.


우리가 반복하는 선택들은 자유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놓여 있는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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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를 살 것인지보다

어떤 하루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가 먼저다.


시간표와 일정과 책임의 배치는 우리의 감정을 미리 정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선택을 돌아보기보다 설계를 먼저 바라보게 된다. 왜 이 선택이 반복되는지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는 무엇인지 묻게 된다.


설계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설계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게 된다.


투병의 시간을 떠올리면 설계의 힘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시간 동안 나의 삶은 전혀 다른 구조로 재편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었고 결정해야 할 것들은 미뤄졌다. 이전의 삶을 지탱하던 설계가 무너지고 전혀 다른 틀이 생겼다.


그 새로운 설계 안에서는 속도가 느려졌고 기준은 단순해졌다. 하루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순한 설계는 나를 덜 불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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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이 줄어들자 생각도 함께 줄어들었다.

지금의 삶은 과연 누구의 설계 위에 놓여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실은 익숙한 구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바쁘게 움직이며 선택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미 정해진 유인책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단지 설계를 바꾸는 것 만으로는 인생의 모든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나의 삶 안에서 작은 설계는 조정할 수 있다.


집중을 방해하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집중이 가능하도록 하루를 설계하는 것.


쉼이 허락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도 잠시 멈출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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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어디에 시간을 두고 무엇을 반복할지를 정하는

작은 결정들의 집합이다.


문득, 생각의 후반부에 다다르자 설계는 책임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문제를 나의 부족함으로 돌리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실패를 볼 때 그 사람의 의지보다 그가 놓인 구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같은 시선을 적용해 보려 한다.


이 새벽의 서재에서 나는 책장을 덮으며 설계라는 단어를 다시 내려놓는다.


설계는 단지 도면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은근히 결정짓는 힘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자리 잡는다.


나는 ‘설계’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설계는 어떤 의도가 놓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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