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오늘 새벽은 고요했지만 감상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서재의 공기는 차가웠고 나는 의자에 앉기 전 잠시 생각의 방향을 점검하며 오늘은 어떤 단어가 나를 통과하게 될지를 조용히 정리해 보았다.


투병 이후 나는 하루를 시작할 때 감정부터 세우지 않는다. 몸의 상태와 마음의 긴장을 확인하고 내가 오늘 무엇을 밀어붙이려 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피하려 하는지를 먼저 살피는 쪽에 더 가까워졌다.


이번주 요한 하리의 책은 지식을 얻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태도를 점검하는 과정에 가깝다. 문장이 옳은지를 판단하기보다 그 문장이 나의 삶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때 아이들은 어떤 기술을 습득할까? 우선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방법을 파악하고, 자신이 떠올린 놀이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아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아 낸다.


아이는 언제가 자기 차례이고 언제가 다른 친구의 차례인지 협상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러므로 타인의 필요와 욕구, 그것들을 충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한 아이는 실망감과 좌절감에 대처하는 법을 배운다.”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 379page



협상.

1. 둘 이상의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를 통해 모색하는 것.

2.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와 조정을 통해 타협점을 찾는 과정.


협상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따라가 보면 의견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를 통해 모색하는 일이라고 정의된다.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들이 양보와 조정을 통해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라는 설명도 덧붙는다.


이 정의는 정확하지만 동시에 너무 넓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단 한순간도 협상을 멈춘 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단어는 삶 전체를 가리키는 말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이번 주에 썼던 설계와 시도와 공간이라는 단어들도 협상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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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이해관계의 협상을 전제로 하고

시도는 현실과 가능성 사이의 협상이며

공간은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 조절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협상이라는 문제를 우리는 왜 점점 어렵게 느끼게 되었을까.


책은 그 이유를 놀이의 부재와 함께하지 못하는 문화의 결여에서 찾고 있었고 나는 그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놀면서 협상을 배운다. 자신이 떠올린 놀이가 더 재미있다고 설득하고 순서를 조정하며 때로는 포기하고 때로는 양보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필요를 이해하게 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정이 우선이고 이기는 것보다 함께 계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그러나 요즘처럼 방 안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원하는 것만 선택하는 환경에서는 타인의 욕구를 읽어야 할 필요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할 이유도 거의 사라진다.


선택은 많아졌지만 조율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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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쉬운 구조가 되었다.


의견 차이를 좁히는 과정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우리는 점점 협상을 회피하고 불편한 일이 된다.


하지만 협상을 피할수록 관계는 얇아지고 갈등을 통과하지 않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타인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유지되는 연결은 쉽게 끊어진다.


협상은 단지 이익을 조정하는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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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식이며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훈련에 가깝다.


투병의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의사와 가족 그리고 나 자신과도 끊임없이 협상을 하고 있었다.


치료의 방향과 일상의 속도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불편함의 범위를 조정하는 일은 모두 협상의 연속이었다.


몸은 이상을 요구했지만 현실은 한계를 말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을 찾아야 했다. 그 과정은 타협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조정이었다.


협상은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지속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행위이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이다.


나는 종종 협상에서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양보하는 태도가 단단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는 관계를 끊어내는 방식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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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나를 낮추지 않고 서로가 설 수 있는 지점을

찾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관계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또한 나와 타인의 욕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사회 역시 협상을 통해 유지된다. 법과 제도와 관습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 온 긴 협상의 기록이며 그 기록 위에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간다.


협상이 사라지면 그자리에 협박이 자리를 잡게 된다. 협박은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결국 더 큰 갈등을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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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협상은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비난을 반복하기보다 지금 가능한 범위를 인정하고 조금씩 조정해 나가는 태도가 나를 덜 지치게 만든다.


이 새벽의 서재에서 나는 책장을 덮으며 협상이라는 단어를 다시 바라본다.


나는 ‘협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협상은 이익을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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