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 시. 아직 아침이 완전히 시작되기 전이라 베란다 너머의 공기는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아 있다.


설명절 연휴 기간이라 그런지 동네도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창문을 조금 열어 찬 공기를 들이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따라 손에 쥔다.


올해 설은 분주함 대신 고요함으로 시작되고 있다.

명절이면 으레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고향.



고향은 늘 설, 추석과 함께 묶여 다니는 말처럼 느껴진다. 귀성길 뉴스와 함께 등장하고, 차례상 준비와 함께 따라오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겹쳐진다.


그래서 오늘 이 새벽에는 그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향은 우선 공간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이며 어릴 적 뛰놀던 골목과 저녁이면 불이 켜지던 작은 창문들이 떠오른다.

kimdaejeung-thatch-roofed-hose-7528715_1280.jpg?type=w1

설 전날이면 부엌에서 분주하게 들리던 칼 소리와 기름 냄새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내가 그저 배부르고 따뜻하게 웃고 있던 자리가 내 첫 번째 고향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공간은 조금씩 변했다. 낡은 집은 새 건물로 바뀌고, 익숙한 가게는 문을 닫았다.


동네 어르신들의 얼굴도 하나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묘한 서운함을 느꼈다. 고향은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보다 더 빨리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고향은 단순히 남아 있는 장소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실제의 고향이 조금 달라져도 내 안의 고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루의 나무결과 장판의 무늬와 창틀에 맺힌 서리까지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 기억 속에서는 모두가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다정하다.


명절은 그 기억을 불러내는 계절 같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잊고 지내던 얼굴과 목소리가 설이 되면 문득 또렷해진다.


나는 차를 마시며 어린 시절의 설날을 떠올린다. 세배를 하고 나면 손에 쥐어지던 세뱃돈의 감촉과 그보다 더 기뻤던 어른들의 웃음속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다.

세배를 받는 쪽에 더 가까워졌고, 누군가에게 용돈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명절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책임과 배려도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고향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설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움과 부담이 함께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향을 떠올리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곳에는 나의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실수도 많았고 서툴렀던 시절이지만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고향은 내가 처음으로 나였던 자리다.


아직 역할도 직함도 없이 그저 한 사람으로 존재하던 시간이다.

zheng2088-korea-5203610_1280.jpg?type=w1

올해 나는 분주한 귀성길 대신 이 조용한 집에 머물러 있다. 고향으로 향하는 대신 마음속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있다.


서재의 창밖으로 희미한 햇빛이 번지기 시작한다. 나는 또 생각했다.

고향은 꼭 이동해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일까.

어쩌면 고향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


지난 시간을 탓하기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길 때 그 자리가 이미 고향일지도 모른다.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따뜻해진다.


명절은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으로 연결되는 사람들.


짧은 통화 속에서도 묻어나는 걱정과 애정 그럼으로 고향은 결국 사람의 얼굴로 남는다.풍경보다 오래 남는 것은 사람의 온기다.

chulmin1700-a-country-house-4867273_1280.jpg?type=w1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 아이는 아마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 연결이 바로 고향이라는 단어의 힘일 것이다. 고향은 나를 다시 다정하게 만드는 말이다.


서둘러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말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고 속삭이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서 천천히 굴려본다.


나는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고향은 돌아가야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기억하고 감사할 때 내 안에 존재 한다.





이전 10화‘협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