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 시 설 연휴의 마지막 아침이라 그런지 베란다 너머의 공기가 며칠 전과는 다른 결로 가라앉아 있고 나는 따뜻한 차를 손에 쥔 채 그 미묘한 변화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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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을 채우던 웃음은 내게 없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음을 기약하는 시간을 가졌거나 가질 것이다.


그 모든 발걸음이 하나둘 정리된 자리에는 고요가 남아 있을 것이고, 그 고요는 이상하게도 허전함과 평안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며칠 동안 우리는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길게 설명하며 때로는 사소한 농담으로 시간을 채웠고 그 순간만큼은 각자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연휴의 끝은 늘 조용히 다가와 짐을 챙기는 손길을 재촉하고 자연스럽게 다음을 말하게 만든다.


“또 보자”라는 짧은 인사는 생각보다 깊은 층위를 가지고 있어서 단순한 작별이 아니라 지금의 이별이 영원하지 않다는 안심을 서로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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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 속에 담긴 마음을 곱씹으며

오늘은 ‘기약’이라는 단어를 붙들어 본다.


기약은 사전적으로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일이라 설명되지만 내가 느끼는 기약은 헤어짐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의 장치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 단어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기약이 없다면 이별은 끝처럼 느껴지지만 기약이 있는 이별은 잠시의 간격처럼 받아들여진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현관을 나서며 신발을 고쳐 신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고 그 장면이 조금은 벅차게 다가올 것이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어도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로를 붙잡지 않고 웃으며 배웅할 수 있다.


기약이라는 말에는 강요가 아니라 배려가 담겨 있어서 지금은 떨어져 있어도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기를 바란다는 조용한 응원이 함께 실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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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약은 관계를 억지로 묶어 두는 끈이 아니라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실에 가깝다.


연휴가 끝나면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질 것이고 그 일상은 때로는 바쁘고 때로는 지루하며 또 때로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지금의 헤어짐을 과장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문득 기약하지 못했던 이별들을 떠올리며 다음이 있다는 말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그 사실이 오늘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 안을 다시 둘러보면 며칠 전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인데도 어딘가 텅 빈 듯한 느낌이 스며 들고, 그 빈자리가 완전한 상실이 아니라 잠시의 여백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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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은 그 여백을 두려움이 아닌

기다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다음 명절을, 다음 계절을, 혹은 그보다 더 빠른 어느 날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오늘을 마무리하고 그 상상이 현재의 아쉬움을 조금 덜어 준다.


기약은 이어짐을 암시하는 문장이다.그래서 나는 이 마지막 아침에 기약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놓고 지금의 헤어짐을 과장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고 그때도 오늘처럼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다시 다음을 약속할 것이다.


나는 ‘기약’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기약은 시간을 미루는 말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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